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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칼럼] 내가 손에서 슬랙을 놓지 못하는 이유

지난 5월,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요즘은 회사 업무 이야기가 올라오는 슬랙을 쉬는 날에도 수시로 확인하곤 한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2017년 6월 말 퇴사해서 2022년 5월에 다시 입사했으니 만 5년을 꽉 채워서 프리랜서 생활을 한 셈이다. 7년 6개월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하고 마지막 출근을 하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퇴사를 결심한 날의 하늘이 기억난다. 친한 동료들과 근처 예술의 전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무척이나 파랬다.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외쳤다. ‘와 X발, X라 좋다’. 얼굴에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무언가 모를 해방감과 후련함이 가슴 한구석에서 차올랐다. 이직 계획이 없는 퇴사였기에 막막할 수도 있었건만 조직을 떠난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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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나와 3권의 책을 쓰고 나만의 브랜드 ‘월간서른’을 만들었다. 2년 동안 2,500명이 찾는 오프라인 모임으로 만들었고 CGV, 배민아카데미와 콜라보 강의를 열기도 했다. 오프라인 마켓 ‘서른마켓’을 2번 개최했다. 회마다 1천 명 가까운 사람이 찾았고 행사가 흥행하자 대기업과 백화점의 콜라보 요청이 줄을 잇기도 했다. ‘월간서른’과 동명의 유튜브 채널은 카카오, 폴인, 퍼블리와 콘텐츠 제휴를 이어오며 구독자 1.5만 명이 넘는 채널로 성장했다. 프리랜서로서 1인 기업가로서 나름 입지를 다졌고,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나는 모두의 기대와 달리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선택의 배경을 궁금해한다. 왜 취업을 하기로 했는지, 왜 마이프랜차이즈라는 회사를 선택했는지.

선택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21년 봄쯤부터였던가, 번아웃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월간서른은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에서의 성장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개인사업자로서 월간서른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은 최대한 해봤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오프라인으로의 재기는 기약이 없었다. 나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욱 친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아이템도 분야도 떠오르지 않았다. 번아웃이라 불러야 하는지 무기력이라 불러야 하는지 또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길을 잃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한 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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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배경은 아이였다. 결혼 4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직 초보 부모이긴 하지만 아이가 생긴다는 건 내 삶에의 책임감이 올라간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책임감이란 비단 한 사람을 경제적으로 잘 키워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을 하든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하며 돈을 벌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었다. 단순히 ‘돈 많은 아빠’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멋진 삶을 살며 돈도 많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세 번째 배경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같은 나이에 다 같이 크고 작게 자기 일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코로나가 길어졌고 나를 빼고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크게 성장했다. 온라인을 통해 각자 하던 일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경우였다. 가까운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그 비결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뜻밖에 비결은 단순했다. 자신이 잘하는 한 분야에서 최소 10년간 노력하며 성공의 경험을 키워낸 것이었다. 성공의 분야도 다 제각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기를 잘 만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옆에서 오래 지켜본 입장에서는 그들의 노력과 시간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결정해야 했다. 나는 어떤 분야를 10년간 할 것인가. 내가 오래 할 만큼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그리고 앞으로도 잘하고 좋아할 만한 분야는 무엇인가? 창업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대표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참아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가 있지만, 적어도 대표가 겪어야 하는 종류의 스트레스는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창업이 아니면 강사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강의와 워크숍은 프리랜서 생활 동안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활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강의라는 활동은 수익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내 천직이라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결론은 두 가지였다. 마케팅과 글쓰기. 이 두 가지 만큼은 앞으로 꾸준히 해나가고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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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책을 쓰며 느낀 점이 있다면 글쓰기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글쓰기가 본업이 되는 순간 되려 글쓰기를 오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글로 써낼만한 삶을 살아야 글이 써졌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글만 쓰며 살아갈 자신은 없었다.

남은 건 마케팅이었다. 마케팅 팟캐스트를 6년간 진행하며 마케팅 분야 도서와 마케터로서의 자기계발 도서를 1권씩 썼다. 어느 자리에 가서건 마케팅 이야기가 나오면 3시간은 쉬지 않고 떠들 만큼 자신과 관심이 있었다. 첫 회사에서 커리어의 절반 이상을 마케팅 일을 했으니 조금만 더 하면 10년이었다. 10년간 한 분야에서 일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10년은 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물음이 이어졌다. 어디에서 마케팅을 할 것인가?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대기업에 가거나 스타트업에 가거나. 대기업에 가고 싶진 않았다. 상명하복, 느리고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보수적인 조직문화 등은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스타트업은 다르다. 자율적인 문화, 빠르고 단순한 의사결정 구조, 자율적인 조직문화. 5년간 프리랜서로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스타트업의 문화가 맞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이른바 업사이드(upside)가 있는 곳이 스타트업이라 여겼다.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고 경제적 보상 역시 크게 주어지는 곳을 원했다. 스타트업에 한 가지 리스크가 있다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5년간 회사 없이 혼자 일했던 경험을 가진 나에게는 전혀 위협 요소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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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의사를 SNS에 밝히고 운 좋게 60여 개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중 30개의 회사 대표님들을 만났고 1개 회사에 최종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곳이 지금 근무 중인 마이프랜차이즈다. 창업 시장을 혁신하고 예비창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회사에서 나는 마케팅팀 리더로 근무 중이다. 이제 2주 뒤면 입사한 지 3개월이 된다. 짧은 기간 동안 마케팅 방향성을 세우고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밤낮없이 회사 슬랙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나를 보며 아내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일 생각을 해?’ 그러게.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계속 회사 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더러 앞으로 마케팅 업계에서 끝장을 내라고 한 사람은 없다. 취업하라고 등 떠민 사람도 없다. 불안정하고 인지도 낮은 스타트업으로 가라고 한 사람도 없다. 이 회사를 선택한 것도 나다. 고민이 될 때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 것이다. 내가 내린 결정이니 누구를 탓할 일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다.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를 해피 엔딩으로 만드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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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선택이 맞을까? 이 회사를 계속 다녀도 될까? 지금이라도 이직해야 하나? 고민 없고 흔들림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런 물음에 답하는 태도다. 내 안에서 피어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른 사람이 하도록 두지 말자. 남들이 준 답을 따라가다가 후회할 일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수 있겠나? 그때 가서 대신 답해준 사람을 탓해봐야 소용없다.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내 안의 질문에 답하자. 그리고 그 답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 내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 책키라이터 강혁진

(마이프차 / 마케팅팀 /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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