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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칼럼] 956 비평 연대 이야기

“선생님 1차 서류심사와 2차 마케팅기획서작성 심사까지 통과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대표님 면접만 남았습니다.”
“그래 고생 많았다. 네가 그리도 원했던 출판사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입사에 성공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뭐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 바쁘신 것 알면서도 이렇게 마구 들이대네요.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지금 너무 절박해서요. 면접을 위해 지금 제가 뭘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요?”
“……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방금 네가 말했거든!”
“네? 제가요?”
“응!”
“… 혹시 절박하다고 말씀드린 것…?”
“비슷해. 내가 생각한 것은 그 앞 문장이야. ‘마구 들이대고 있다’는 그 말.”
“아!”
“네가 지금 들어가려고 애쓰는 그 출판사의 대표는 경영자이기도 하지만, 문학박사고, 문학 평론가이기도 하거든. 전형적인 지식인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지식인의 약점이 뭘까?”
“… 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네요. 지식인들은 마구 들이대지 못하죠. 그런데 저는 그걸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하고요. 사실 그거 빼놓곤 가진 것도 없으니까요. 히히.”
“하하~ 그렇지! 너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단 다가가서 그걸 달라고 하거든. 나중에 갚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말이야. 네가 나에게 찾아올 때도 그랬잖아. 그냥 무작정 와서 도와달라고 했지. 암튼 지식인들은 너 같은 뻔뻔함이 없어. 대부분 낯이 아주 얇거든.”
“그러니까 면접에서, 대표님이라면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큰, 저의 뻔뻔한 면모를 적극 어필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 회사에 가장 없을 법한 것을 바로 네가 가지고 있는 거니까.”
“정말 끝내주는 전략입니다. 이제 쫄지 않고, 면접에 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선생님!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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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자와 톡으로 나눈 실제 대화다. 올해 초. 자신은 반드시 출판사에 취업을 해야겠다면서, 도와달라고 느닷없이 쳐들어온(?) 녀석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출판사 취업을 도와준 친구들이 20여 명쯤 된다. 대부분은 한 학기씩이라도 대학에서 내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저절로 닿은 인연 하나도 없이, ‘친구의 엄마의 언니의 남편’인 나에게까지 찾아왔던 거다. 그러니까 무작정 밀고 들어와서는, 없었던 인연을 기어이 엮어낸 것이다. 나로선 무척 신기한 녀석이었다. “너를 가르친 적은 없지만, 너무 궁금하다. 너란 친구가. 이 호기심 때문에라도 널 제자로 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처음 만난 날 했던 말이다.

 

나와 제자들과의 인연이 종으로 맺어지는 연대라면, 제자들은 김성신의 제자라는 공통점 하나로 서로 인연을 이어 연대를 이루고 있다. ‘956 비평 연대’는 지난 2019년, 당시 갓 스무 살을 넘긴 친구들을 문화비평가로 육성하기 위해 만든 커뮤니티다. 웹 소설과 웹툰, 게임, 공연, 광고 등등 이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콘텐츠들은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거대한 시장을 만들기도 했고,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의 순환 생태계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이로써 대중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신종의 문화들을 직접 누리고 있는 그 세대가 직접 비평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해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현대의 문화와 예술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대중을 설득할 만한 비평적 능력이 있는가.’ ‘비평가로서의 권위를 어떻게 부여해 줄 수 있는가’ 등등의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국악을 전공하면서 학교에서 공연 비평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 대학 재학 시절 이미 웹 소설가로 유명해진 이후 웹 소설 비평을 친구, 대학 재학 시절 이미 웹 소설가로 유명해진 이후 웹 소설 비평을 시도하던 친구, 게임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 한 친구, 광고를 비평의 대상이라고 생각한 친구, 이렇게 네 사람이 모였다. 나이를 보니 한 명이 95년생이고, 나머지 세 사람이 96년생 동갑이었다. ‘956 비평 연대’라는 명칭은 아무 성의 없이 대충 만든 것이었다. 2021년 이 명칭은 97, 98, 99년생이 새로 합류하며 ‘956789 비평 연대’로 바뀌었고, 최근 건축 비평가를 지망하는 94년생이 합류하면서, ‘9456789’로 할 것인지, 새로 가입하는 친구들의 순서에 따라 ‘9568794’로 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특이점(?)이 왔으니 숫자를 다 지우고 ‘비평 연대’라고만 부르자는 의견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어차피 이미 숫자로 된 명칭을 부르는 구성원도 없다.

 

9명이나 되는 젊은 비평가들을 나 혼자 다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부턴 문학평론가이자 방송 진행자이기도 한 허희 평론가가 이들의 멘토가 되어 정기적으로 토론 등을 등을 주최하고 있다. 또한, 한국 문화콘텐츠 비평 협회 소속의 여러 학자와 다양한 분야의 비평가들이 청년 비평가들의 성장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다. 손정순 시인이 운영하는 문화잡지 ‘월간 쿨투라’는 비평 연대 청년 비평가들의 칼럼을 릴레이 연재하고 있다. 현직 무용수면서 공연 비평가를 꿈꾸는 97년생 비평연대 구성원도 있다. 그에겐 최근 문화비평가이자 공연 비평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최여정 평론가가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며 나섰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딱 그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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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그래, 뭘로 갚을 건데?ㅋㅋ”
“…”
“복수는 반드시 당사자에게 되돌려야 하지만, 은혜는 그게 잘 안돼. 갚을 수가 없어.”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내 인생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런 대가 없이 날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나는 그걸 너를 향해서도 갚은 거거든. 그러니 내가 너에게 보인 이 작은 관심을 만약 네가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너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렴. 너의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일 중에 출판인이 되겠다는 결정이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시는 곳이니까요.”

 

이 친구가 최종 면접을 보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방금 면접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이 글이 게재될 시간쯤이면 당락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오 주여. 제발~”

 

– 책키라이터 김성신
(출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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