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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칼럼]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출근하면 먼저 창문과 문을 연다. 식물들이 밤새 별일 없었는지 살피고 목이 말라 보이는 애들은 흙을 확인하고 물을 준다. 조명들을 켜고 책 브러시로 책 표지를 털고 테이블 위를 걸레로 닦는다. 청소기를 돌린 다음 물걸레에 흥건하게 물을 묻혀 바닥을 박박 닦는다. 좋아하는 향을 골라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음악을 틀면 오픈 준비 끝. 자리에 앉아 SNS에 오픈 피드를 올린다.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책 소개, 한 번은 공지, 한 번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 한 번은 신간 목록같이, 미리 주제를 정해놓고 일처럼 한다. 주기적으로 현타(내가 SNS 하려고 서점 하나…)가 찾아오면 업로드가 뜸해지는 시기가 있지만, 대부분은 오프라인 공간인 서점의 문을 열듯, SNS 속 서점 문을 여는 기분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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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손님이 많지 않아 손님 응대에 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대부분은 테이블 위에 올릴 책을 고르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소개할지 고민하고 책 진열을 바꾸거나,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고, 납품 서류를 만드는 데 쓴다. 또 출판사 인스타그램이나 출판사에서 오는 메일, 신문이나 매거진 등을 통해서 책 소식을 접하고 책들을 주문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쯤 신간과 재고가 없는 책을 주문한다. 재고 파악은 아직도 쉽지 않다. 잘나가는 책이라 넉넉히 주문해두면 그때부터 한 권도 팔리지 않는 건 내가 서툰 탓일까. 작은 서점이라 재고가 쌓이는데 예민해서 수량은 정말 조금씩, 대신 좀 자주 주문하는 편이다. 택배로 도착한 책을 확인하고 재고 목록을 정리하고, 책을 꺼내놓는다.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두 번까지 영업 종료 후 이런저런 모임이 있다. 모임을 기획하고, 모집하고, 진행하는 것도 당연히 내 몫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임이 생기면 준비하는 데 또 시간이 필요하다. 거의 일 년째 진행되고 있는 독서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이 년째 진행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은 두 달에 한 번 주기로 새 팀이 만들어진다. 처음 하나로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세 개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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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점에서 책이 잘 읽힌다고 하는데 막상 나는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야 책 읽을 시간이 생긴다. 서점 운영 시간엔 책을 읽을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보통 출근 전 카페에 가거나, 퇴근 후 집에서 읽는 것이 보통인데 대체로 즐겁지만 때로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끔 인근 지역 학교 도서관 납품 주문이 들어온다. 이렇게 돌발적인 업무가 생기면 그 일은 어김없이 업무 외의 시간 또는 휴무일을 활용해야 한다. 학교들이 보통 비슷한 시기에 도서관에 책을 채우는지 꼭 바쁠 때 같이 바쁘다가 일이 뚝 끊긴다. 일정 조율에 실패하면 밤을 새워서 일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루에 손님 10명도 채 오지 않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뭐가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걸까, 신기하다 가도 하는 일을 정리해 보면 어쩐지 또 수긍이 간다.

 

2년 전 가을, 상주에서 서점을 열었다. 회사만 다녀봤지, 자영업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내가, 서점을 운영하게 되었다. 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같은 해 어느 여름날, 여느 때처럼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는데 사장님께서 따라 나오셨다. “저희가 빈 공간이 있는데요.” 주춤주춤 끝인사를 미루면서 꺼낸 이 말이, 서점의 시작이었다. 카페 근처 창고로 쓰려고 빌려놓은 공간이 5개월쯤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 본인들은 활용을 못 하고 있으니 뭐든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라고. 네? 공간을 그냥 써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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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무작정 상주로 사는 곳을 옮겼다. 처음엔 6개월, 그다음엔 1년 더,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시기를 늦췄다. 정착하고 싶으면서도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던 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계속 상주에 살고 싶은데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하나,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침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였다. 나보다 한두 해 먼저 이곳으로 와서 사는 카페 사장님이 내 마음을 모르지 않았을 터.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 온 것이다. 눈앞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민을 시작했다. 딱 5개월, 할 수 있는 것, 될 것 같은 것, 아쉬운 것을 차례로 떠올려보고 나니 결론은 꽤 빠르게 도출됐다. 서점이 필요했다. 책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고를 수 있는, 서가 사이에 서서 책장에서 꺼낸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낼 공간. 평생 손님으로 다닌 서점, 이번엔 주인이 되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그럼 해볼까. 이 정도의 각오로 시작한 서점이 하루하루 쌓여 무사히 지금까지 왔다.

 

그동안 몇 번이나 직업을 바꿨다. 기준은 늘 ‘지금 하고 싶은 일인가?’ 선택의 순간에는 언제나 가장 하고 싶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하다 보면 늘 싫은 점이 더 커졌다. 그런데 서점은 좀 다르다. 싫은 게 없다. 이 일이 나에게 최고로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싫은 게 없으니 편안하다. 바빠서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때는 있지만,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딱 5개월만 해보자는 흐릿한 각오로 시작한 일이라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 싶은지 때때로 막연해지기도 하지만 떠올려보면 서점에서의 내 하루는 결코 막연하지 않다. 꽤 치열하고 구체적이다. 책을 읽는 것이 점점 더 재미있고, 좋은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도 즐겁다. 무엇보다 상주에서 서점을 열어줘 고맙다는, 이전의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보람까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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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점 2주년이었다. 재계약 없이 2년 만에 문 닫는 자영업들이 얼마나 많은데, 2년을 넘기고도 무사히 열려 있다. 단골이 생겼고, 친구가 생겼다. 동료들이 생겼고, 거래처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오래 이 일을 하고 싶어졌다. 넉넉하지 않지만 큰 고민 없이 살아간다. 주절주절 늘어놓는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료가 그런다.
“그거 그거네.”
“뭐?”
“만족.”

 

-책키라이터 노니
(상주에서 ‘좋아하는 서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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