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Best / [에세이]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오늘도

[에세이]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유난히 인생살이가 지치고 서글퍼 도무지 살맛이 안 나는 순간에도 느껴지는 식욕, 마지못한 연인과의 이별 앞에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무안할 정도로 울리는 뱃고동 소리. 당장은 감정 몰입을 방해하는 이질적인 욕구 같지만 굉장히 힘이 센 건강한 욕망입니다. 이제 막 산도를 뚫고 나온 갓난아기는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젖을 먹는 방법을 깨우칩니다. 배가 고프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며 상황을 알립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는 데는 한나절이면 충분합니다. 허기는 사람을 일깨웁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이자 필요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갓 구운 빵 냄새에 꿈틀거리는 오장육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으로 허한 속을 가득 채우는 순간, 왕창 깨진 날 동료가 말없이 건넨 커피 한 잔의 향이 주는 위로. 우리는 이렇게 음식을 음미하며 먹고 또 추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고 보면 먹는다는 행위는 그저 동사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기계적인 행동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수만 년 전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눈부신 문명을 일궈냈습니다. 생존에는 육체적으로 나약한 인류의 안전만큼이나 지속적인 식량 확보가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문명이 탄생하고 문화가 생기다 못해 인류는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진출하는 눈부신 도약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매해 역대급을 갱신하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정말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옵니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제 뉴스가 잦아질수록 편의점 즉석식품 쇼케이스는 다채로워집니다. 1분 50초 – 2분 10초. ‘땡!’. 전자레인지가 다 돌아가면 투명 플라스틱 뚜껑을 열어 급하게 데워진 음식으로 속을 채웁니다. 잘 먹고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인데 왜 우리는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시간마저 아끼고 게다가 식비마저 먼저 줄이기를 서슴지 않을까요?

화면 캡처 2022-12-01 222330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의 강효진 작가는 그런 우리에게 먹는다는 본질적 의미를 성찰하며 그간 지친 마음에 36.9도의 물 한 잔을 내어주는 듯합니다. 작가는 불안했고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들마저 담담하게 고백하며 소소하게 때로는 당당하고 또 사랑스럽게 오롯이 자신을 위한 요리를 대접합니다. 작가의 식탁에는 다소 품이 드는 요리부터 시판 냉면과 라면에 풍미를 더한 간편식 그리고 정성스레 내린 커피 한 잔과 내리사랑을 추억하는 식혜 등 음식 냄새보다 사람 냄새가 짙은 요리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모든 음식을 대충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안에는 작가의 지난 삶과 현재가 빼곡히 새겨있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허기를 다스리는 요리보다는 ‘인생의 맛’이 녹아든 깊은 맛이 나는 음식이어서일까요? 작가는 자신만의 인생 문장을 완성하며 누구보다 자신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음식이 담긴 접시로 마침표를 찍으며 다음 문장을 이어나가는 듯합니다. 

“커다란 문제들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만큼은 이렇게 내 방식을 시도해 본다. 어쩌면 이런 작은 시도가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살아온 내가 한 끼를 먹더라도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하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고, 드디어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산다.” 

오늘 먹은 음식은 우리 몸의 일부가 됩니다. 소화되면서 스며들고 또 서서히 축적됩니다. 꼭 음식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며 먹었는지, 이러한 순간들도 우리 삶의 일부가 됩니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매일 아침 새롭게 우리 앞에 놓인 빈 접시 하나. 접시는 오로지 단 한 명을 위한 독자적인 공간이자 단 한 번뿐인 오늘 하루 그 자체라고요. 갑작스레 음식에 대한 자세가 자못 진지해져 부담스러워진다면 작가의 레시피를 따라 소중한 하루를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화면 캡처 2022-12-01 222950

책에는 여러 레시피가 나옵니다. 그런데 평소 자주 보던 정량적 레시피가 아닌 다소 생소한 ‘인생 맥락적 레시피’를 제공합니다. ‘ml, g, T, t’ 같은 단위로 준비해야 하는 익숙한 재료 안내와 ‘5분, 10분, 완숙으로’ 등의 정확한 조리법은 덜어내고 독자가 직접 만들어보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요리를 완성해가는 단위 ‘적당히, 큼직하게, 넉넉하게, 먹기 좋은 두께, 한소끔, 솔솔’ 같은 자기 주도적 요리법을 알려줍니다. 다소 불친절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의도는 오히려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요리 과정은 삶의 단련 과정을 닮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단독으로 먹으면 입에 쓰고 맛도 없는 각가지 재료들도 다른 재료들과 섞어 알맞은 조리과정을 겪으면 조화로운 음식이 되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난날의 여러 쓴맛, 단맛, 치욕의 맛, 눈부신 성공의 맛, 상처의 맛, 위로의 맛이 섞이면 그래도 역시 살아보니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고 살만한 인생의 맛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만을 위한 인생 최고의 요리는 당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인생을 주재료 삼아 만들어가면 됩니다. 

그릇을 비우면 마음이 차기 마련입니다.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와 함께 오롯이 당신을 위한 다정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민희 큐레이터

About wekim

Check Also

002

[라이브톡] 궁극의 발전을 이루는 5단계 성장론 – 초지능

  상위 1% SKY 의치대 합격생을 탄생 시켜온 스타 강사 장진우. 7년 간 학생들을 최상위권과 극상위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