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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때리는 부동산

[에세이] 난 내 삶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 뼈 때리는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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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무엇과 같은가? 비유를 통해 한 문장으로 짧게 표현하세요. 그리고 그런 문장으로 표현한 이유를 간략히 서술하세요. (분량은 5줄 이내)” 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과 고전 읽기’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 지난 6년 동안 매번 기말시험에 출제한 문항이다. 그러니까 한 학기 동안 약 30시간의 강의로 풀어서 설명했던 것을 단 하나의 단어로 집약해 보라는 것이다. A4 한 장을 10pt 짜리 글씨로 가득 채우면 약 2,000글자가 들어간다. 이 분량을 놓고 듣는 상대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속도로 읽으면 약 10분이 걸린다. 즉 서른 시간 동안 말한 내용을 글자로 옮기면 약 36만 자, 200자 원고지로 1,800장 정도가 된다. 3백 페이지 내외의 두툼한 소설책 두 권 정도의 분량이다. 결국 기말시험의 이 문제는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36만 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내용을 단 하나의 단어로 함축해야 하는 쉽지 않은 미션이다. ‘고전이란 창문과 같다.’, ‘고전이란 게임이다.’, ‘고전이란 막 잡은 생선과 같다.’…… 답안에는 대학생들 다운 기발하고도 신선한 발상들이 잔뜩 등장한다. 이들이 고전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정한 단어 딱 하나만 보아도 이들이 내 수업을 어느 정도 깊이로 이해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올해는 그중 이 답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전은 북극성이다.”

이 학생은 북극성이라는 단어를 선정한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고전은 사람이 나아감과 중심을 찾아가는 길의 길잡이이다. 고전은 모든 것이 변해갈 때, 무엇이 변하지 않는 가치인지를 알려준다. 우리는 고전을 찾고, 읽고, 배우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다.” 내가 30시간에 걸쳐 학생들에게 기억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단 하나의 문장이 이 학생의 답안에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이 변해갈 때, 무엇이 변하지 않는 가치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 문장 말이다. 나는 그에게 최고점을 주었다. 고전을 이렇게 이해한 친구라면, 인생의 그 어떤 국면에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며 잘 살아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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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뼈 때리는 부동산』이라는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나는 그냥 좀 시큰둥했다.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에서부터 사람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흡인력이 좀 약하게 느껴졌다. 흔한 부동산 투자 가이드류의 책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표지 중앙에 적힌 짧은 카피가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난 부자가 되기보단 내 삶을 지키고 싶었다.”

공감이 가는 문장이었다. 책을 뒤집어 뒤표지에 적힌 글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디서 어떤 투자를 해 얼마의 수익을 올렸단 도장 깨기 식의 화려한 무용담도 아니요, 일타 강사가 수능 문제를 찍어주듯 청약 전략이나 경매 낙찰 노하우를 알려주는 족집게 지침서도 아니다.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는 저평가되었으니 지금이라도 서둘러 사 놓으면 훗날 돈 좀 될 거란, 아니면 말고 식의 사이비 천기누설은 더더욱 아니다” 책의 프롤로그 중 한 대목이었는데 그런게 아니란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저자가 적어 놓은 이 ‘아닌 목록’을 읽으면서 점차 이 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항목들은, 내가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책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와 정확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목록을 파악 후 곧장 『뼈 때리는 부동산』을 펼쳤고 처음부터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책은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4백여 페이지 꽤 두툼한 책을 불과 두어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때로는 공감했고 때로는 감탄했으며 저자와 함께 웃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지?라는 궁금증이 문득 생겼다. 부동산 투자에 현실적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는 실용서 같기도 하고, 부동산 정책을 세밀하게 다룬 사회과학서 같기도 하며, 또 어찌 보면 대한민국 수도권의 개발사를 다룬 인문학서 같기도 하고, 에세이라는 형식 면에서 보면 문학서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고민했다.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실용성을 가진 인문·사회과학 에세이’였다. 다양한 요소와 그 장점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요소를 의도적으로 뒤섞어 집필 역량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부동산에 대해 다루려는 내용, 글의 의도와 목적 등에 저자가 충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독특한 형식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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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박람강기(博覽強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글을 널리 읽고 기억을 잘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써, 삼국지에서 원소가 박학다식한 조조를 두고 한 말이다. 널리 읽어 다양하게 알게 된 것들을 놓고, 이리저리 서로 엮어보면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상황이나 맥락을 전혀 새롭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판타레이-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를 쓴 민태기 박사의 글은 ‘박람강기’라는 단어로 형용하기 충분하다. 그의 글은 다빈치의 소용돌이 스케치에서 시작해, 중국 로켓 기술의 아버지인 첸쉐썬의 생애까지 600여 년에 이르는 유체 과학사를 살피며 과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또 세상이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진화시키는지를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설명했다. 나는 『뼈 때리는 부동산』을 읽으며 이 책의 저자 역시 ‘박람강기’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판타레이』가 유체 역학이라는 작은 주제로 시작해 과학사 전체와 인류의 문명과 미래에 대한 사유가 충분히 가능하도록 펼쳐나갔다면, 『뼈 때리는 부동산』은 대치동 은마아파트라는 작은 주제로 시작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거쳐, 급기야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에 관한 사유까지 뻗어 나가도록 이야기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연하고 거시적인 글은 아니었다. 지극히 세밀한 부분에서부터 우리 한국인들의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지극한 공감하며 읽혔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무렵 책의 표지에 적혀 있던 그 문장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난 부자가 되기보단 내 삶을 지키고 싶었다.”라는 문장 말이다. 기말시험에 내가 출제했던 문제처럼 『뼈 때리는 부동산』이 세상에 나와 전하고자 한 바를 나는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았다. 결국 ‘집의 본질은 안락한 삶’이라는 것이다. 부동산이 단지 ‘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삶’에 관한 문제임을 깨닫자 지금껏 이해하기 힘들었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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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수업 중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시대를 홍수로 급류를 이룬 강물에 비유했다. 우리가 지금 이 급류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다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얼마나 빨리 떠내려가는지를 아는 것? 얼마나 많은 사람이 떠내려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따위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살아남으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찾아 몸을 고정해야만 한다. 고전은 인간의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마치 급류가 흐르는 강 한복판에 박힌 거대한 암반처럼 말이다. 수백 년, 때로 수천 년을 살아남은 고전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옳고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확인해 준다. 『뼈 때리는 부동산』은 새로 나온 책이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를 확인해 준다는 의미에서 고전의 미덕까지 가진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독을 권한다.

-책키라이터 김성신
(출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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