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pecial / [서평 연재3]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서평 연재3]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3편
나이 든다는 것은 꽤나
아름다운 것이라 믿는다.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슬퍼도 괜찮아’라는 말이 듣고 싶다면,
박선아의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박선아 지음, 책읽는수요일, 2020.06.22.)

 

나는 엄청 뚱녀였다.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그 매장은 허리 30치수 이상의 옷은 팔지 않는다는 말에 속으로 ‘쳇, 허리 30이 넘으면 백화점 옷 못 입는 거야? 고무줄 바지나 입으라는 건가?’ 하며 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펑퍼짐한 고무줄 바지를 입은 중년의 후덕한 아줌마를 만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뚱뚱한 아줌마가 되는 것이 진짜 싫었다. 마흔이 되던 해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피트니스 센터에 갈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은 핑계였다. 연간 회원권을 내 몸뚱이에 투자하자니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생각해 낸 방법이 산책과 홈 트레이닝이었다. 남들은 한가로이 걷는 길을 나는 경보 선수처럼 재빠르게 걸었다. 태풍이 오는 어느 여름밤에는 모자를 쓰고,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들고 산에 올랐다. 제정신이 아닌 여자로 오해받기 딱 좋은 날씨였지만 다행히 그날 산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동네 뒷산으로 뛰쳐 올라갔다. 3년 동안 매일 매일 걸었다. 살을 빼기 위해 걷기 시작했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걷는 일 자체가 좋아졌다. 요즘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걷는다. 길 위에 있을 때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선아가 한 말이 딱 맞다.

 

“방심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여러 틈으로 행복이 들어왔다.
행복은 그 이름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여러 틈으로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박선아의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는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책의 모든 꼭지는 산책을 제목으로 썼다. 아빠와 [산책], 누군가를 떠올리며 [산책], 짬뽕 대신 [산책]. ‘산책’이라는 말을 ‘행복’이라고 바꿔보았다. 그래도 말이 된다. 그녀에게 산책은 행복이었다. 산책하면서 그녀가 느꼈던 일상의 소박한 행복들을 보여준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익숙해져서 깨닫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가끔 모른 척하며 살았던 것들을 알려준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한 발 내디디면 거리의 신호등처럼 나의 행복에도 초록 불이 들어올 것만 같다.

 

그렇지만 저자는 인생이 마냥 핑크빛 행복으로만 채울 수 없음도 말해준다. 마음에 비해 생각이 빠르게 늙어 서글플 때, 회사에서 의젓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을 때, 주변의 많은 것들과 멀어지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슬픔이 많은 어른이라는 사실을 끄덕거리며 걸었다고 한다. 별것이 다 슬프게 느껴지냐고 하겠지만 인생이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저마다 다른 크고 작은 슬픔을 마주치게 된다. 한 대 맞고 쓰러지기도 하고, 어쩔 도리 없이 슬픔에게 내 자리를 뺏기기도 한다.

 

“어른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걷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그래,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슬픔을 견디고 나면 좀 더 나은 어른이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 이름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 계절이 있다면 기쁨, 슬픔, 행복, 고통으로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살다 보면 기쁘고 행복한 날도 많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도 있기 마련이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계절처럼 다가오고 또 지나가는 것일 테니, ‘슬픈 어느 날에는 천천히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고통스러운 어느 날에는 잠시 멈춰 서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 ‘슬픔’이라는 단어조차 그다지 슬프게 느껴지지 않을 때, ‘슬픔’안에는 작지만 반짝이는 무수한 것들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린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것은 좋은 것 혹은 꽤나 아름다운 것이라 나는 믿는다.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About wekim

Check Also

KakaoTalk_20240502_142021624

[책키픽스] 궁극의 발전을 이루는 5단계 성장론 – 초지능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을 원하고 성장에 도움을 주는 책, 영상, 강의가 넘쳐나는 시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