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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칼럼] 어느 가영이의 고백!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이것은 인기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캐릭터, 가영이의 명대사이다. 이 장면은 ‘퇴사할 때 단톡방에 올리는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유명해졌는데, 특히 ‘퇴사짤’로 불리우며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패러디 되어왔다.

대한민국의 직장인 치고, 하드에 이 짤 하나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가영이 퇴사짤 한번 써 보고 싶다고. 그러나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떠난 가영이가 마침내 자신의 행복을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집요하게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가영이의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Postman, shipping, delivery, courier concept. Girl working, delivers the purchase to the recipient. Young beautiful woman in holding out cardboard box. Vector flat design.

그냥, ‘그래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로 대충 퉁치고 말려는 것 같다. 그래야만 언젠가 자신도 퇴사를 통해 가영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것은 제 행복을 찾아 떠난 지 6개월이 된 어느 가영이의 퇴사 에필로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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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뜬다. 비척비척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한다. 아침은 스프 한 봉지에 빵 반 쪼가리. 친구는 이 무슨 2차 산업혁명 당시 프랑스 임노동자 같은 식단이냐며 비웃지만, 퇴사 이후 딱히 고정 수입이 없는 백수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 한 끼면 족하다. 즉, 나머지는 대충 간단히 때운다는 거다.

Question, brainstorm, thinking concept. Dream young nice pretty cute woman or girl, indecisive lady thought choose decide dilemmas solve problems finding new ideas. Simple flat vector.

대충 아침을 해결하면 학원에 간다. 가영이는 퇴사하고 한동안 방황했다. 그녀는 여태까지 두 권의 책을 출간하기는 했지만, 그 책들로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도 없었다.  퇴사 직후 3개월 동안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메타버스,  3D,  NFT 등의 솔깃한 키워드가 귀에 들어왔다.

살면서 평생 디자인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그녀는 그렇게 무작정 3D 그래픽을 배우겠답시고 퇴직금을 털어 덜컥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그것도 6개월짜리 장기 과정으로.

그렇게 주 5일, 하루 5~6시간을 대충 학원에서 그래픽 툴을 공부하며 보내고 나면 4시. 집에 가면 대략 5시 정도 된다. 그녀는 직장에 다닐 때도 5시면 퇴근을 했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과 당시의 삶을 비교했을 때 타임 라인 차원에서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녀는 3D 그래픽을 배우고자 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3D 그래픽을 배우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 포토샵과 디지털 드로잉을 배우면서, 그녀는 기왕 배운 김에 뭔가 써먹겠다고 호기롭게 NFT 제작에 도전해본다.

Money, savings, investment, capital concept. Young happy student woman teenager girl puts cash dollars in piglike moneybox, saving money. Making bank deposit investment currency, capital accumulation.

요즘 ‘핫’하니까. 혹시 아나. 유명한 NFT  콜렉터가 내 작품을 하나 사줄지. 이걸로 방구석에서 돈을 버는 본격적인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렇게 잔뜩 꿈에 부풀어 이것저것 바쁘게 준비해서 NFT를 올린다. 그러나,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저 NFT 올렸어요, 이제 저도  NFT 작가입니다. 음하하. 하고 SNS에 올려보지만, 역시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가님,작가님 하면서 잘 대해주던 마켓 플레이스 담당자도 이제는 더 이상 내 연락에 답변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굴할 순 없다. 그래도 내가 글은 좀 쓰지. 그녀는 이제 웹소설에 도전한다. 요즘 웹소설이 돈이 된다던데, 꼭 그래서 만은 아니다. 그녀는 어릴 때 팬픽을 썼었다. 한 20종 정도.

Technology, social media, work, business concept. Human character hands using laptop in office for work or social network communication or watching videos. Digital technological devices in daily life.

일부 작품은 당시에 꽤 인기를 끌기도 했다. 마침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면서, 단행본 출간으로도 이어지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그녀는 무료 연재 사이트에 필명을 등록하고 웹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5 천자씩 짬내서 틈틈이 글을 쓰며 실시간으로 연재에 도전한 지 2달이 넘었지만 그녀가 쓴 작품의 선작수(선호작품 수)는 여전히 3자리 수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제 딴에는 매일 한 두 시간씩 투자하여 피고름으로 쓴 회심의 역작을 이토록 성실하게 올리고 있는데 이 세상의 100명도 그걸 안 읽는다는 거다. 이제 그녀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에 의미가 있는 거지 뭐, 일단 완결만 내보자.’라고  정신 승리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Thinking, doubt, question sign concept. Frustrated Thinking woman cartoon character standing with question mark on forehead feeling doubt having no answer vector illustration

그녀는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Who Am I?

나는 대체 뭘까? 퇴사하고 나서 웹소설, 3D 모델링, 디지털 드로잉 등 많은 것에 도전하고 있지만 그 무엇도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자본과 경제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는 이 세상의 이치로 봤을 때,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은 전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불행하냐고? 가끔은 그렇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은 아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요즘, 나는 자기 소개를 할 일이 생기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안녕하세요, 나이는 서른 여섯이구요.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포토샵 프로그램에는 ‘오퍼시티(투명도)’라는 조절 값이 있다. 이 값이 0%면 완전 투명, 100%면 완전 불투명이다. 이전까지,직장에 다니던 당시의 나의 삶은 완전 0%의 오퍼시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투명하게 미래가 어느 정도 들여다 보였던 삶이다. 나는 그렇게 내 3년 후, 5년 후가 눈에 빤히 보이는 대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뛰쳐나오는 순간 내 삶의 오퍼시티는 100%의 하얀 백지가 되었다. 가뜩이나 그냥 냅둬도 불투명한 그 상태 위에, 나는 이런 저런 불투명한 브러쉬로 돌이킬 수 없는 색칠을 해나가고 있다. 3D 모델링이든, 웹 소설이든, NFT든, 글쓰기든,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해나가며.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하나의 색깔로 규정되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고, 나 스스로도 당장 내년의 내가 뭘 할지 빤히 들여다 보이지도 않는 , 그야말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니까.

그렇지만,이게 꼭 나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애써 정신 승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가영이의 경우에는 그것을 그냥 즐겨보기로 했다. 미래가 실제로 닥쳐야지만 어떤 미래인지 알 수 있는 불투명한 인생은 어쩌면 복권 긁기처럼 꽤나 흥미진진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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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방금 읽은 위의 글에서, 가영이의 이름은 설인하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 수많은 가영이들이 남아있다. 그 모든 가영이들이 전부 자신의 행복을 찾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나처럼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헤매며 인생의 불투명도를 높이는 그런 가영이 동지(?)들도 있을지 모른다.

 

Career development support, assistant or mentor to help reach business goal to achieve target concept, helping hand lift up businessman employee to overcome obstacle reaching the star in the sky.

그래도 나는 모쪼록, 그 모든 가영이들에게 행복한 에필로그가 있기를 바라본다. 좋든 싫든, 우리 모두 언젠가는 가영이가 될 것이고,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말로 그들의 결말을퉁쳐버리기에는 너무 밋밋하니까. 투명하고 뻔하지 않은, 불투명하고 다채로운 가영이들의 내일을 바라며. 어느 가영이의 짠내 나는 고백은 이만 여기서 줄인다.

 

– 작성자 : 설인하 책키라이터
<돈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저자 / Geek W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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