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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슬픔의방문

[서평 연재10]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10편
나의 슬픔으로
당신의 슬픔을 위로하고 싶다

 

10.슬픔의방문

『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낮은산, 2022.12.04)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길게 느껴졌다. 이제 가을인가 싶으면 한낮에는 무덥고, 아직 여름이네 하면 새벽바람이 쌀랑했다. ‘따로 자던 고양이가 이불 속으로 불쑥 들어오면 그때부터 가을’이라고 장일호 작가는 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잠결에 슬며시 이불을 끌어다 덮을 때 그녀의 말을 실감한다.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잦아지거나, 비데 시트 온도를 높여야겠다고 느낄 때 가을이 곁에 왔음을 알게 된다. 온기가 필요한 계절이 시작된다.

나는 가을을 사랑하지만 심하게 가을을 타는 편이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고,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가을에는 몸도 마음도 힘들고 아프다. ‘언니, 가을 탄다고 했는데 괜찮아?’라며 S가 안부를 물어왔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유난을 떨었나 싶었지만, ‘아직 괜찮아’라고 답장을 보내는 나를 보며 진짜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 안심했다.

가을에는 무작정 슬퍼지고, 자주 운다. 왜 슬픈지 나에게 묻는다. 시간을 되감아 본다. 아주 오래전이었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그 일이 떠오른다. 그해 가을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큰일을 겪었다. 내 몸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 안에서 생을 멈춘 작은 생명을 보내야만 했다. 나를 엄마라고 불러 줄 첫 번째 아이였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태명조차 지어주지 못해 사무치게 미안했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몰래 숨죽여 우는 날이 많았던 그해 가을. 2007년 가을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슬프다는 말 외에는 쓸 수 있는 말이 내게는 없었다. 그 말은 ‘아프다’와 비슷한 말도 아니고, ‘기쁘다’, ‘즐겁다’의 반대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슬픔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애잔함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슬픔은 죽음이 보내는 작별 인사 같다. 장일호는 이제 돌아오지 못하는 젊은 아빠를 그리워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피난 짐에 챙겼던 씨앗을 여태 심어 키운 외할머니의 토종 오이를 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떠올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슬픔이 묵직하게 방문하면 마음 둘 곳을 몰라 서성인다.”

살다 보면 슬픔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순간이 오면, 의연하게 이겨내는 사람이 있고, 힘없이 허우적거리는 사람도 있다. 같은 이름의 슬픔일지라도 그 크기는 절대 같지 않다. 슬픔은 사람마다 고유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네 맘 다 알아. 널 이해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이해하는 척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일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위로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과 교감할 수 있고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상대의 맘을 토닥여 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부모의 죽음이나, 자식의 죽음 같은 일이 그렇다. 어떤 위로의 말로도 마음을 치유할 수 없고 그 아픔을 나눌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듣고,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누고, 가만히 끌어안는다. 눈물과 체온만큼 사람에게 가닿는 위로도 없기 때문이다.

장일호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위로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을 순간에도 의연하고 덤덤하게 매일을 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가 깨달았다. 진한 물감에 물을 타면 색깔이 연해지듯 커다란 슬픔도 시간을 타면 무덤덤해진다는 것을. 나는 가을을 타면서 내 슬픔을 연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살아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녀의 문장이 오랫동안 나를 서성이게 했다. 살아남아서 마음에 무덤을 만들며 살아가는 나를 떠올려 본다. 슬픔이라는 방의 문을 이제 열 수 있다. 나의 슬픔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가을이 힘든 이유를 찾았다. 그해 가을이 비로소 내게 왔다. 살면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로 나의 슬픔과 나란히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의 슬픔으로 당신의 슬픔을 위로하고 싶다. 당신의 곁이 되고 싶다.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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