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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_기록되지 않은 노동(최상현 숏평)

[숏평24] 짧고 강한, 서평연대의 출판 숏평!

표지_기록되지 않은 노동(최상현 숏평)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 지음, 삶창)

 

<기록되지 않은 노동>은 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에서 13명의 참여자들이 31명의 직업을 인터뷰하고 기록하여 엮은 책이다.

 

책에 인터뷰이로 나온 직업들 모두 돌봄/서비스 노동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다수다. 야쿠르트 판매원, 도우미, 운동 강사, 보육교사, 톨게이트 노동자, 보조출연자, 방과후 교사, 활동보조인 등. 돌봄/서비스 노동에 기반하거나 우리가 익히 관심을 갖지 않던 직업이었다.

 

의문이 생겼다. 왜 돌봄/서비스 노동은 기록되지 않은 것일까? 기록된 것들은 중요하기 때문인데, 반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건 중요하지 않고 당연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돌봄/서비스를 어떻게 인식하는 반증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 언급된 직업들 다수가 4대 보험도 없고 임금 체불을 겪기도 한다. 근로 계약서도 쓴 적도 없거나 남성으로부터 성희롱도 겪는다. 설상가상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도 쉬지도 못한다. 이들의 아픔은 노동과 노동이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납작한 시선과 함께 묻혀버린다.

 

돌봄/서비스 노동에서 이들의 삶은 존중받지 못한다. 시스템의 문제가 이들의 증언에서 공기처럼 피어올라 그들의 존재를 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 뒤로 그들은 숨지 않고 ‘설치고 떠들고 연대했다. 부당한 일에도 목소리 내어 밀린 임금을 받고, 노조를 결성하고, 복직을 하기도 했다.

 

‘돈이 적어도 내가 좋아하고 보람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하고 싶다. (100쪽)’ 던 산모도우미의 글을 읽으며 일의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연봉 액수에 일의 존중이 비례하는 한국 사회는 액수가 적거나 무급이면 일이 아니라는 편견이 팽배해다. 모두가 돈만 바라보는 사회에서 다양성이 자라날 틈이 있을까, 사회 변화는 노동 후 받는 액수가 아닌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스템의 변화 아닐까.

 

비록 통계를 기반으로 한 수치가 부족하지만, 대신 당사자의 목소리엔 수치로 드러나지 않은 존엄성이 있다. 이들을 기록하고 수면 위로 건져 올릴 때, 권리를 위해 저항하고 변화를 시도하려는 당사자가 보인다. 이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책으로 내 삶의 궤적을 반추해 보았다.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던 어린이집 선생님, 게스트하우스 청소 일을 할 때 도움을 주던 여성 노동자,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 방과 후 교사, 활동 보조인 등등 내 곁을 지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존엄을 지키며 삶과 투쟁하는 이들의 울부짖음과 외침이 자꾸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다가 희미해지는 시대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말해져야 할 용기가 더욱 힘이 실려야 되겠다. 권리를 외칠 권리가 변화의 시작이기에.

 

책 출간 후 8년이 흘렀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노동 현장에서 기록되지 않거나 못한 채 산재, 폭력, 성희롱 등의 부당함을 겪는 분들이 많다. 여전히 기록되지 않은 것들로 삶은 채워져 있고 아직도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해 보인다.

 

최상현 프로필 사진

최상현 / 서점원, 9N 비평연대

 

표지_두발의 고독(김선진 숏평)

 

『두 발의 고독―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싱긋)

 

걷는 행위의 행복을 일깨워 주는 토르비에른의 『두 발의 고독』.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전증은 저자 토르비에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뇌전증으로 30년 된 운전면허를 반납하게 된 그가 선택한 이동 수단은 두 다리였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내 고무장화가 부드러운 풀밭에 푹 빠지던 느낌까지 오롯이 되살아났다.”

 

오두막 뒷길, 오솔길, 시내의 인도 등 다양한 길을 걷는 그의 발걸음 속에는 경쾌한 리듬이 담겨있다. 그의 리듬은 바쁘고 빨리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작은 휴식을 제공한다. 토르비에른이 걷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삶에서 놓치고 있었던 ‘걸음’이 떠오른다.

 

산책이나 가벼운 나들이를 떠나 돗자리 펴고 읽기 좋은 책이다. 토르비에른이 들려주는 소곤소곤 담소 나누는 소리, 바람에 풀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유로운 도보 여행을 떠나보자.

 

김선진 프로필사진

 

김선진 / 출판마케터, 9N비평연대

 

표지_최선을 다하면 죽는다(현다연 숏평)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황선우·김혼비지음, 문학동네)

 

회사 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에세이스트 김혼비는 자신이 꽤 오랫동안 번아웃을 겪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시기에 황선우 작가와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아야 하는 사이가 된다. 사적인 친분은 없지만, 독자로서 서로의 글을 좋아하는 사이였던 두 사람의 편지는 존경과 배려, 애정이 담긴 팬레터 내지는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 보내는 펜팔에 가깝다. 첫 편지를 쓸 때 두 사람 모두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빈칸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빗장을 풀고 기쁨과 슬픔을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웃음과 치유를 선사한다. 그렇게 주고받은 스무 번의 안부가 곧 한 권의 책이 되고, 그 책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당연시하는 세상에 살면서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준다. 잠시만 여기 앉아서 우리랑 이야기 좀 하면서 쉬었다가 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현다연 프로필 사진

현다연 / 9N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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