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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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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정해준 길로 가지 않을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심술궂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경로를 이탈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는가, 하는.

그렇다. 네비게이션의 경로는 내가 정한 경로가 아니다. 그러니 그 경로를 꼭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이탈했다는 그 경로는 애초에 내가 갈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길’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히 나는 경로를 이탈한 것이 아니게 된다. 수많은 가능성의 길 중 하나를 기웃거리며 탐험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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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는 그렇게 ‘수많은 가능성의 길’을 걷고 있는 10인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그들이 이탈한 경로는 각각 이런 모습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삶을 일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닌, 일을 삶에 맞추”거나(전업주부 몽키), “자신이 똑바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같이 사는 경험’을 해보거나(농부 비나·솔),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대상은 다양한 관계고, 선의라고 믿”거나(심오한연구소 대표 심바), 잃고 싶지 않아서 좋아하는 일에 몰빵하지 않고(청년대장장이 숫돌), 조금 느리지만 세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고 믿으며(남성 페미니스트 견과) 근원적 즐거움을 주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실천을 계속하는(일상환경운동가 오한빛) 것이다. 또 “다양한 인종과 몸들 사이에서 무엇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든 나로 살 거”(비건댄서 초)라고 다짐하며 일상을 디자인하고(예술가·활동가 미어캣),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하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다”(생활경제상담사 미스페니)고 북돋우며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하는(헬프엑스여행작가 모모) 것이다.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의 저자 김소담은 외국계 제조기업 마케터로 일하던 시절,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고 누구의 손에 맡길지 고민하는” 회사 언니들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단순히 워킹맘들의 흔한 고민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소담은
“앞으로 살면서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지금껏 가장 좋다고 여기며 걸어왔던 길이 어색하게 보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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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저 고민은 김소담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만이 지상 과제일 때는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회사 언니들과의 대화 이후로 그 질문은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다가왔다. “주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말이다. 이 고민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묻는 것이었고, 무엇에 우선으로 가치를 둘 것이냐는 물음이기도 했으며, 또 어쩔 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필사적으로 주목해야 할 사회문제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생의 롤모델이 없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는 “누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김소담의 말이 맞다. “인생은 각자의 고유한 것인데, 누가 누구의 모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말대로 다만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한 삶의 이정표가 있을 뿐이다. 저자에게 이정표는 ‘단어’다. 이 ‘단어’란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나만의 키워드”다. 20대엔 꼭 무엇을 해야 한다고, 20대란 이러한 시기라고 말하는 수많은 유튜브 콘텐츠들, 방송 프로그램들, 책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그려보게 도와주는 이정표다.

저자가 이 책에 담긴 청년들을 인터뷰한 것은 이 이정표를 “더욱 생생하게 다듬기 위해”서였다. 여행작가인 저자가 만난 “이번 여행지”는 “사람”이었다. 비건댄서 초는 아프리카의 리듬과 팝 멜로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음악의 일종인 아프로팝을 베이스로 추는 ‘아프로댄스’를 통해 숨기고 싶었던 몸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다. 초는 살에 대한 편견, 비건은 엄청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않을 거라는, 날씬할 거라는 편견, 비건 음식은 맛이 없을 거란 편견과 싸우고 극복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생활경제상담사 미스페니는 재테크에 있어서도 나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가 중요한 사람이라면, 지출을 줄이는 것보다 소득을 올리는 게 그 사람에게 맞다. 그런 사람에게 사고 싶은 걸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냐고 강요하는 것은 그를 불행하게 만든다. 하기 싫은 걸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한 사람이라면,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는 지출을 줄이는 편이 행복하다. 그에게 조금만 더 일하면 편하지 않냐고 강요한다면 그 역시 불행해질 것이다. 모든 문제에서 그런 것처럼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내릴 때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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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아도 오늘은 좋을 수 있다. 오늘이 좋았으니 내일도 좋으리라는 사소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길을 간다는 것이 ‘수많은 가능성의 길’이 아니라 ‘이탈한 경로’처럼 느껴질 때도 종종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인터뷰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한편으로 그건 위로의 과정이기도 했다.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사실 불안한 적도 많았다. 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나는 안정을 찾았고, 위로받았고, 안갯속처럼 희미하게 윤곽만 보이던 것들도 선명해졌다.”고. 이 책을 덮고 나면, 이 책에 실린 사람 여행지를 모두 경험하고 나면 독자들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제 안에도 무기력함이 있어요. 일상의 실천을 통해 기쁨과 만족감을 얻지만, 그건 그냥 ‘나의 세계’라는 거, 알아요. 내가 어떻게 하든 세상이 망가져가고 있단 사실은 뭐랄까, 너무나 정직하죠. 하지만 (중략) 저는 그냥 그런 실천들이 즐거워요. (중략) 집안 살림을 하더라도 더 건강하게, 나에게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물건으로 바꿔가는 것. 그건 부정할 수없이 더 나아지는 방향이잖아요.”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 속에 존재하는 내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것과 동의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깨달았”다는 일상환경운동가 오한빛과 저자 김소담의 말에 무릎을 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를 통해 우리 내면 역시 여행해 볼 수 있다. 매 인터뷰 말미에 소개되는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은 독서로의 여행을 부추긴다. 이제 우리도 가슴속에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나만의 키워드를 하나쯤 품고 다니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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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향 콘텐츠 미디어 랩 에디튜드 대표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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