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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 표지

[서평 연재1]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1편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 표지

 

“우리 엄마, 일 안 해요. 우리 엄마가 맡으면 돼요.”
6학년이 된 아들이 학급 부회장이 되었다. 임원의 부모들은 학급 봉사를 해야 하는데, 이따위 이유로 아들은 나를 학부모 대표로 추천했다. OMG, 의문의 1패다. 그래 놓고는 마음에 좀 걸렸는지 그날 저녁 아들이 다가왔다. “엄마! 요즘은 일 안 하는 엄마가 플렉스야. 아빠가 부자라는 거니까” 이 자식이 아주 병 주고 약 주고다.

 

초등학교 때 꽤 똘똘했던 나는 자주 임원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한 번도 학부모회 등으로 나서지 않았다. 어린 마음엔 그게 무척 서운했었다. 사실 ‘못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엄마는 사느라 늘 바빴고, 세 아이 모두를 따라다니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것을 엄마에게 묻거나 따지진 않았다. 이해는 수십 년이 지나서야 가능했지만 말이다.

 

감투는 엄청난 것이었다. 얼떨결에 학부모 대표가 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느낌. 하지만 우쭐한 기분은 곧 내 인생 가장 캄캄했던 시절을 소환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지쳐있었다. 집 앞 산책조차 힘겨운 노동이었다.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고, 한 손은 큰아이 손을 잡고 걸어야 했는데, 커피 한 잔이 너무나 간절했던 어느 날엔가 나는 ‘사람은 왜 손이 두 개밖에 없냐’고 소릴 질렀다. 짜증을 내면서 내가 뱉은 말이 어이가 없어 곧 실소를 터뜨렸다. 하여간 밥도, 잠도, 쉼도, 세상에 나를 위한 것이 단 한 조각도 없었던 세월이었다. ‘과연 나는 살고 있는가?’ 그때의 나는 묻고 또 물었다.

 

2011년 겨울. 그날도 예외 없이 녹초가 되었지만,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밤이 되어도, 딱히 어디 갈 만한 곳도 없고, 갈 수도 없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은 그때 읽었다. 책은, 아이가 잠들어준 그 찰나의 진공 같은 시간 동안에 내가 열 수 있는 유일한 세상이었다. 김무곤 교수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 세상 도처에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지금 보면 그저 담담한 문장이지만, 그때는 가슴 한복판으로 치고 들어왔다. ‘책을 읽는 행위’라는 것에 완전히 매료된 날이었다.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또는 아내에게
핀잔받는 책 읽기야말로
읽는 자에게
지고의 쾌락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한 여자와 그녀의 시간이 이 문장 위에서 밤새도록 서성거렸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온전히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는 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너무 간절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주인이 될 수 없었던 시간을 꾸역꾸역 책으로 버텼다. 나, 참 잘했다.

 

읽다 읽다 이젠 쓰기로 했다. 연재 서평 칼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는 나 김윤정이라는 사람의 독서일기다. 표현은 거창하지만, ‘내 삶에 주인이 된다’는 것도 별 쓸모는 없는 일이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니까 말이다. 자존심도 그렇다. 사랑도 그렇고, 희망도 그렇고 용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을 결국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세상에 내 글을 보여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 나에게 구원이 되어주었던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권함.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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