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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게도 국수 표지

[서평 연재2]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2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강종희와 수많은 이에게

 

어이없게도 국수 표지

 

뜨거운 국물이 필요할 때

 

첫 칼럼이 게재되고 SNS에 원문 링크를 올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읽기와 쓰기가 평생의 취향’이라며 강종희 선생이 댓글을 달았다. 쓸모없는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니, 왠지 나와 비슷할 것 같아 그녀가 궁금해졌다. 댓글을 타고 그녀의 SNS를 방문했다. 화면에 보이는 빽빽한 영어가 그녀의 커리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쳇! 얼마나 지독하면 40대에 다국적기업의 총괄 이사가 되는 걸까?’ 말 그대로 그녀는 슈퍼 우먼이었다. 매일 슈퍼에 가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조금 전 느꼈던 동질감이 이질감으로 바뀌는 순간, 살짝 질투가 났지만 그럴수록 더 궁금해졌다. 스토커라도 된 듯 SNS를 염탐하다가 그녀의 저서 “어이없게도 국수”를 발견했다. 어이없게도 심하게 끌렸다. 이럴 때는 ‘끌렸다’보다는 ‘낚였다’가 맞는 말일 테다. 제목만 봤을 뿐인데 갑자기 국수가 먹고 싶고,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으니 나는 제대로 낚인 것이 맞다.

 

2012년, 서울 토박이에 일 중독자였던 저자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시점에서 직장을 접고, 갑작스레 남편의 발령으로 부산으로 이주했다. 생면부지 낯선 동네에서 경력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녀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단으로 글쓰기를 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글쓰기의 주제가 국수라니. 국수에 관한 책이라니. 그렇다. 어이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헉헉거리며 하루를 산다. 나는 먹기 싫어도 가족들의 끼니를 위해 밥을 지어야만 한다. 내가 벗어 놓은 옷은 겨우 한두 벌인데 세탁해야 할 옷은 산더미이다. 해도 해도 영 티가 나지 않는 일로 가득한 날들이 쌓이고 나는 나이를 먹는다. 행복이나 보람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이 인생은 허무하게 흘러간다.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지만, 막상 나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맥이 풀리고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렇게 가라앉아있던 어느 날 만난 문장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심이 흔들리는 때가 있다. 그간 참 남부럽지 않게 바쁘고 성실하게 살았건만 지금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버퍼링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내 안의 패배감에 가위눌릴 때 가라앉는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찾다 나의 거의 모든 순간에 있었던 국수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혹독한 동면의 시간을 녹일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나가는 슈퍼우먼 같은 그녀도 지치는 순간이, 도망쳐 숨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니.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책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국수 그릇을 슬그머니 내 앞으로 밀어주는 그녀를 만났다. 국수를 먹으며 위로받았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그제야 내게 다가왔다. 그 안에 담긴 추억들이 살아나서 말을 걸었다. 훈훈한 국물이 위장을 데우고, 쫄깃한 면발이 배 속을 채운 이야기만 있다면 그저 그런 면 요리 소개서가 되었겠지만, 저자는 책 속에 ‘공감과 지지와 연대’라는 말을 숨겨 놓았다. 막연한 ‘위로’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 있었다. 국수에서 시작해 지지와 연대까지 떠올리는 게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질투보다는 이런 감정들이 훨씬 생산적이고 건강한 태도가 아닐까? 그녀가 국수 이야기에 올린 고명은 바로 그것이다.

 

강종희가 나에게 그렇게 해준 것처럼, 나 또한 강종희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강종희와 수많은 나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고단한 삶의 위안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국수 먹기를 강추하는, 강종희의 “어이없게도 국수”를 권한다. 그녀를 데운 것처럼, 나를 데운 것처럼 이제 당신의 속을 뜨끈하게 데워 줄 것이다.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김윤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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