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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진 프로필 편집

짧고 강한, 서평연대의 출판 숏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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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의 사이에서 모든 미스터리는 시작된다. 미스터리 장르에서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 모두의 ‘몰이해’가 만난 접점에서 살인이든 사고든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죽어야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니까. 언제부터인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면 경주하듯 등장인물들의 외로움을 견주고는 했다. 가장 외로워 보이는 한 사람에게 배팅하면 그 사람이 죽었다. 물론 아닐 때도 있었지만.

 

‘호텔 피베리’는 그런 악질적인 습관을 들먹이며 읽기에는 난처한 지점이 많은 소설이다. 내가 직접 여행하는 듯 다채롭고 또렷한 하와이의 풍광이 시시각각 지나는 가운데, 무거운 짐을 고향에 처박아두고 모인 여행객들이, 낯섦이 설렘으로 변모하는 공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국의 여행지, 호텔, 처음 보는 사람들. 어우러지는 인물들을 훑으며 이곳에 로맨스와 낭만이 있을지언정 구질구질한 외로움이나 지루함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양립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낭만을 찾으면서도, 설렘으로 교감하면서도, 등불 밑에 어둠이 들듯 스멀스멀 외로움이 깊고 진해졌다. 어쩌면 『호텔 피베리』는 외롭지 않으려는 이들이 끝내 외로워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처연하고, 그래서 안쓰럽다. 마지막으로는 이야기를 읽고 덮은 나조차도… 한 알 한 알 촘촘한 피베리 자루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무엇보다 길고 진득하게 남는다.

 

박소진 프로필 편집

– 박소진 문화평론가·웹소설작가·9N비평연대 소속·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홍학의 자리

에드거 앨런 포가 1841년 발표한 단편 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은 세계 문학사에서 최초의 추리소설로 거론하는 작품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미스터리소설(Mystery Fiction)’,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에서는 ‘범죄소설(Crime Fiction)’, 우리나라에선 ‘추리소설’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비쥬류의 문학에 언제나 매료되어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홍학의 자리』는 도입부를 제외하고 봉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읽기 시작한 뒤에 멈출 수는 없다! 결말이 아니라 막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되기 직전에 봉인을 하고,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환불하시라는 공언을 딱!”

출판사에서 이 책의 편집을 담당했던 편집자가 남긴 말이다. 불과 30분, 도입부를 읽고 나면 뒤를 이어 계속 읽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을 것이란 호언장담. ‘과연?’ 하며 나는 책장을 펼쳤다. 교사와 제자의 불륜. 설정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편집자의 말처럼 도입부를 지나자 책이 나를 꽉 붙든다. 어이없는 완력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상도 못한 반전에 반전. 작가는 주인공을 죽이고, 나는 통념을 죽였다. 어느 늦은 여름밤의 즐거운 연쇄 킬링!

이승진 프로필사진

– 이승진 건축비평가·9N비평연대

있으려나 서점

96년생인 나까지만 하더라도 ‘서점’이란 존재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e북이나 유튜브에 익숙한 세대에겐 서점은 지난 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종이 냄새를 풍기며 열어보기 전까지 두근거리게 하는 책들의 집합소 서점은 한 번 발을 들이면 끊을 수 없는 매혹적인 장소이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상당한 팬을 확보한, 몽글한 그림체를 가진 작가이다. 그의 저서 『있으려나 서점』에 등장하는 서점은 독특한 책들을 판매한다. 그중에서도 ‘책과 같은 존재’는 책과 우리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책이다. 그 가운데서 마음에 든 대목은 “물체로서의 한계 수명은 있지만 그 정신은 이어질 수 있”다는 문장이었다. 인간과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인 셈이다.
‘있으려나 서점’처럼 독특하진 않지만, 책들이 모이는 서점은 ‘동네책방’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매혹적인 서점에서 좋은 책 하나 골라보는 건 어떨까. 혹시 모르지 않나, ‘있으려나 서점’처럼 말만 하면 조금 희귀하고 독특한 책이 툭 튀어나올지?

윤인혁 프로필 사진

– 윤인혁 사회문화비평가·9N비평연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홍보위원

돌봄과 인권

우리는 돌봄을 배운 적이 없다. 돌보는 방법은 물론이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누군가에게 요청하고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좀처럼 알지 못한다. 누구와 어떻게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만큼이나 중차대한 문제 아닌가.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세트장 바깥에는 준비 없이 보호자가 된 중압감을, 돌봄을 포기한 죄책감을 어찌할 줄 몰라 쓰러진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여성인 그 사람들은 이제 일어서서 세트장의 경계를 질문하고 있다.
이 책은 빈곤, 여성, 가족 문제로 분절되고 축소되어 다뤄지던 돌봄을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할 활동이자 논의해야 할 의제로 제안한다. 누구나 생의 어느 순간 취약하다는 보편성에서 출발해, 모든 시민이 조건 없이 서로 주고받을 권리이자 책임으로서 돌봄을 정의한다. 이제 누구도 돌봄을 말하지 않고 미래를 논할 수 없다.

서경 프로필사진-1
– 서경 출판편집자·9N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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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은 집을 보러 갔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잘나가는 광고기획자로 상승세를 달리던 샤를은 정지한 엘리베이터에 갇혀 끝없이 하강하는 고통을 맛본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샤를의 처지는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의 불행은 애초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는 데 있다.
“그가 울부짖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접니까? 네? 왜 나죠? 당신이 불행하다는 건 이해합니다. 당신이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요. 하지만 왜 날, 나를 갖고 이러냐고요!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이 아저씨가 아무 짓도 안 하셨다네! 그런데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참 대단하시구먼……! 남을 위해 아무 일도 해본 적 없으면서 이제 와서 남이 자기를 위해 뭘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다니!」”
앙리프레데리크 블랑은 자본주의 자체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인간들에 대해 신랄한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다만 직유로만 짜여 있는 상징과 소통의 부재와 오해를 드러내기 위해 동원된 캐릭터들이 어딘가 전형적이고 작위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김미향 프로필

–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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