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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의 말들

[서평 연재5]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5편
다들 자기 말 좀 들어보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듣기의 말들

『듣기의 말들』
(박총 지음, 유유, 2023.06.24.)

“나는 말이 많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좋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인데, 책 제목에 반대되는 말을 이렇게나 자신 있게 쓰다니. 말하기가 여간 좋은 사람인가보다. 영성 강의와 글쓰기 학교 등 말하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니 얼마나 잘할까 싶기도 하다. 요즘은 말 많은 사람들을 TMT(Too Much Talker)라고 놀리기도 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비슷하다. 아는 것으로 밀리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저 순수하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나를 TMT로 만들 때도 있다. 집에 가서 이불 킥을 할지언정 그 자리에선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때 말이다. 어쩌면 박총 작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평생 ‘말하다’의 주어였지 ‘듣다’의 주어였던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듣기의 말들』은 박총 작가의 다정한 당부와 함께 듣기에 관한 명언을 톺아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에 제일 많이 나온 단어는 ‘경청’인데, 한자를 풀어 낸 구절에서 경청의 참뜻을 새삼 알게 되었다. 경은 ‘기울 경’(傾)으로 들을 때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은 쉽게 이해가 간다. 놀라운 것은 ‘들을 청’(聽)이다.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임금(王)처럼 여겨 귀(耳)를 기울이고, 열(十) 개의 눈(目)을 가진 듯 상대를 응시하되, 하나(一)의 마음(心)으로 듣는 것이라고 썼다. 경청이라는 말에는 몸과 마음을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는 뜻이 새겨져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단한 생활에서도 시간을 내어 성심껏 들어 주는 것보다 상대의 소중함과 굄성스러움을 더 잘 느끼게 할 몸짓은 찾기 어렵다. 경청만큼 상대방을 추앙하는 것도 없다.”

들음은 몸과 마음을 함께 써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잘 듣기 위해서는 일단 멈춰야 한다. 부산한 상태에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 아니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얘기할 때 가는 귀가 먹어서 안 들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멈춤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말하는 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몸과 함께 마음도 모두 멈춰야 한다. 온전히 상대를 향해야 한다. 지인 중에 성인이 된 후에 사고로 청력을 잃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내가 이야기할 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무조건 멈추고 몸을 내 쪽으로 돌려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입과 눈과 표정을 응시한다. 들리지 않는 그녀는 누구보다 나의 말을 잘 들어준다. 그녀와 대화할 때 나는 가장 귀한 경청을 경험한다.

논어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이다. 듣는다는 것은 단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넘어서 지금 말하는 사람이 현재 내 삶에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몸소 보여주는 사랑의 행위이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내 앞에 앉는 사람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질 수 있다면 경청이야말로 얼마나 뿌듯한 행복인가. ‘다들 자기 말 좀 들어보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사랑이란 상대의 말을 흥건하게 들어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들어주기가 왜 행복인지를 알게 해준다. 평범한 말을 들어주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들어주는 귀함, 그리고 비밀을 간직하는 자세가 이 안에 있다. 책 속에 있고, 내 안에도 분명히 있다. 연일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작은 소리도 더 잘 들린다. 듣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날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간다.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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