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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 화가의 그림책키라웃 제10편 –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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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 자연은 인간에게 고마운 친구다… ‘오!’

『오!』 (구리디 그림, 나무말미, 2023년)

‘이 곰과 친구가 되고 싶다.’

구리디의 그림책 『오!』에 나오는 ‘곰’을 보고 들은 생각이다. 이 그림책에는 글이 없다. 곰 얼굴의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표정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작가가 표현한 곰의 몸짓들을 보고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게 된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는 곰의 캐릭터에 빠져든다. 글과 표정이 없는 그림에서 더 많은 상상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목탄과 흑연을 쓴 듯한 표현들이 매우 감각적이고, 산뜻하다. 흑백을 주조로 해서 그런지, 전달하는 메시지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마음을 울리는 그림은 평면의 물질을 넘어 살아있는 생명으로 느껴지고,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작가의 능력은 이런 것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마치 흑백 무성영화의 찰리 채플린을 본 것 같은 위트와 감동을 주는, 이제 나의 친구가 된, 숲속의 어느 곰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육중하고 검은 털을 가진 곰은 숲속의 이곳저곳을 다닌다. 곰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뭇가지 끝에 코를 대보기도 하고, 나무기둥을 흔들어보기도 한다. 곰은 나뭇가지를 머리에 뿔처럼 꽂고 춤을 추는 듯한 여러 몸동작을 하다가 저 멀리 뿔 달린 사슴과 눈이 마주치고 멋쩍어한다. 입김을 불어보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어서 놀거나, 빙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는 작가가 그린 곰의 몸의 형태나 몸짓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넋을 놓고 흐뭇하게 보다가 갑자기 ‘앗’ 하면서 뒤통수를 맞는 듯했다.

나는 곰의 모습에 빠져서 겨울이란 배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사방에 눈이 내린 겨울이라면, 곰은 이미 먹이를 충분히 먹고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시기다. 겨울에 잠도 자지 못하는 곰이라니, 재롱만 보고 좋아했던 내가 좀 미안해졌다.

나는 곰의 사정을 알아차린 후에는 익살스럽게만 보이던 곰의 동작들 하나하나에 마음이 아팠다. 빙판이 갈라진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 눈밭에 벌러덩 누워서 온몸을 버둥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는듯한 모습들이 모두 먹이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몸짓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곰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든 것은 눈 속에서 발견한 쓰레기다. 곰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주변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동굴로 들어간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까지 버려주는 곰이라니! 자연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분별한 산업개발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은 최고의 골칫덩어리이다.

북미 대륙의 네이티브 아메리칸(북미 인디언) 신화가 생각난다. ‘하느님(위대한 靈)’이 모든 동물들을 모아놓고 제안한다. 다른 동물들은 잘 먹고 잘 살아 특별히 걱정할 것이 없는데, 유독 사람만이 재주가 없어 굶어죽기 십상이니 동물들이 돌아가면서 인간에게 사냥을 당해 주자는 것이다. 그 제안에 동의한 동물들은 사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호의적인 선물로 자기의 살을 내주어 사람들을 먹여살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 신화를 믿고 있는 인디언들은 그렇게 마음을 내어 희생한 동식물들을 고마운 친구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귀한 선물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준다는 것이다.

나는 그 신화를 믿고 싶다. 우리는 자연을 점령의 대상이 아닌, ‘고마운 친구’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작가가 ‘내 아이들, 내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앞으로 올 모든 아이들을 위해……. 행성B는 없다.’라고 한 것처럼, 내 아이들의 친구까지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림책 『오!』는 나에게 ‘자연’이라는 멋지고 고마운 친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천지수 프로필 책키라웃

천지수 (화가·그림책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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