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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사 표1

천지수 화가의 그림책키라웃 – 첫 인사

첫인사 표1

 

“새벽 6시. 달이 지고 있어요.”

 

클레르 르부르가 쓰고 미카엘 주르당이 그린 그림책 『첫인사』 는 등대가 보이는 바닷가의 고요한 새벽 풍경으로 시작한다. 밤 사이 바다를 비추던 달빛은 여명을 맞이하며 서서히 물러간다. 작은 배 한 척이 항구로 들어오고, 썰물의 바닷가에는 조개들이 단잠을 깬 듯 하품을 한다. 소라게는 껍데기 밖으로 다리를 쭈욱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저 멀리 바닷길을 밝혀주던 등대의 불이 꺼지고 등대지기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나무와 꽃, 풀들이 하나둘 깨어나요. 풍뎅이는 지나가는 작은 파리에게 인사를 해요”
아침이 밝아지면서 깨어나는 생명들에 대한 서정적인 시선들은 나를 부드럽게 책 속으로 이끈다. 자연을 대하는 작가의 섬세한 교감이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매일 아침 깨어나 어떤 마음으로 눈앞의 풍경을 보는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라 여겨서인지, 별 이유도 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 탓인지, 곁에 머무는 것들에 대한 기쁨과 고마움을 우린 잘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간밤에 나와 함께 시공간을 같이 한 존재들에게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안부 인사를 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니까.

 

그림책 속 주인공 등대지기 아저씨는 아직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시간에 빵 가게에 들러 갓 나온 빵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도착하자 잠들지 않고 기다리던 강아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는 위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연다. 아침 7시. 방안에는 누가 있을까?

 

“아빠”

 

아이가 침대에서 반가운 얼굴로 양손을 번쩍 들어 아빠와 첫인사를 한다. 아빠에게 안긴 아이의 표정은 눈부신 햇살만큼 밝고 따뜻하다. 아저씨가 가장 기다렸던 시간.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두운 밤 등대를 지켰던 아빠.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은 기나긴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라기보단, 이토록 짧지만 빛나는 찰나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은 너무나 많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생명, 사랑과 설렘, 나를 기다리고 또한 내가 그리워하는 모든 것…… 아주 소소한 것들 같지만, 내 존재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게 하고 삶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양분 같은 것들.

 

그림책 『첫인사』 에서 볼 수 있는 차분한 블루컬러의 새벽 시간은 나에게도 매일 온다. 평화의 시간 말이다. 이 책이 아름답고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아침을 맞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침을 맞는 첫인사로 나는 하루만큼의 빛을 만들기로 했다. 훌륭한 그림책이다. 간단하게 읽는 이의 삶을 변화시킨다.

 

천지수 프로필 책키라웃

– 천지수 (화가, 그림책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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