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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명의를 만나는 방법 –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당신의 주치의가 바로 명의입니다.”

 

순천향대병원 소아응급실 의사로 15년 동안 근무한 이주영의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의 한 구절이다.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가벼운 감기나 장염 증상으로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도, 하루 이틀 사이 다른 병원에 다시 가거나, 응급실에 내원하는 경우 그녀는 처음 병원으로 다시 가라고 말한다고 한다. 처방의 내용이나 근거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환자를 처음 본 의사가 시간을 두고 다시 봐야 현재와 미래의 질병과 환자 상태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를 처음부터 꾸준히 본 의사, 이 아이가 예전에 어떻게 아팠는지 아는 의사, 이 아이가 언제쯤 나빠졌는지 기억하는 의사, 이 동네에 요즘 어떤 병이 유행하는지 아는 의사, 이 엄마가 어떻게 약을 먹이고, 어떻게 아이를 돌보는지 아는 의사. 그런 의사가 ‘나의 명의’라고 이주영은 말한다.

 

우리 동네의 드림 소아청소년과는 항상 사람이 많다. 특히 독감 예방접종 시기에는 대기가 어마어마한데 선생님이 주사 놓는 장면을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알코올 솜으로 쓱쓱 접종 부위를 문지르면 그 차가움에 아이가 놀라기도 전에 어느새 주삿바늘이 꽂히고, 이제 약이 들어가는가 하면 벌써 반창고를 붙이고 상황이 종료된다. 예진 시간을 빼고 ‘주사 맞기 싫다’고 징징거리며 엄마 손에 이끌려와서 막대 사탕을 받아 들고 주사실을 나설 때까지 시간이 1분이 채 안 된다. 주사 맞기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단박에 알아주고 주사를 꼭 맞혀서 독감을 예방하겠다는 엄마의 의지까지 알아주는 의사가 명의 중의 명의가 아닐까.

 

드림 소아청소년과가 사람이 많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휴일에도 진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왜 꼭 주말에 열이 나는지,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불안이 엄습한다. 그럴 때 의사 선생님의 ‘이 약 먹고,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한마디를 들으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마음에도 해열제를 처방받은 느낌이 든다. 열이 내리듯 마음이 녹는다.

 

“그래서 우리는 ‘괜찮다’는 말을 좋아했다. 나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내가 같이 책임져줄게요. 하는 마음과 너 꼭 괜찮아야 해, 하는 당부가 함께 담긴 말인 것만 같아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때로는 돌봄이 필요하다. 한밤중의 소아응급실에서 때로 보살핌이 필요한 것은 아기보다 엄마, 아빠일 때가 있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애쓴 결과일 거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돌봄’을 하는 이의 마음을 돌보는 말, 괜찮아질 거라는 말, 그런 말을 건네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녀가 어쩌면 드라마 밖의 김사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결혼 전이었던 전공의 2년 차 응급실 근무 때, 손자가 두 끼를 연달아 절반밖에 안 먹어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수액이라도 맞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이들 데리고 온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가 고작 두 끼를 건너뛰었을 뿐인데 한나절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는 기적을 목도하고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이 되고 나서야 그 입장을 절반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법이라고 이주영은 말한다.

 

“치료하는 내내 사심 가득 담아 아이들의 보들보들한 손가락을 만지고, 상담하는 내내 욕심껏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에게 건강과 생명을 선물하는 일이고, 세상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아픈 아이들을 위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치료하는 일을, 그래서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이주영. 15년 동안 그녀가 소아응급실에서 만난 아이는 ‘어느 한 아이’가 아니다. 마주하는 아이가 처음에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늦둥이 동생이었다가, 어느 날은 자기 조카로 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자신의 아이가 되는 경험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엄마로, 이모로, 의사로 여러 색의 가운을 입고 오늘도 청진기를 데운다. 아이에게 가기 전에 따스한 손으로 청진기를 문지를 때, 데워지는 것은 청진기만이 아니다.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도 함께 데워진다. 그녀의 손길이 아이의 배를 만지고, 아이의 아픔을 만지고 종내에는 아이의 삶을 만지는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

 

“아이들을 진료하는 것은
병을 다루는 일인 동시에 삶을 만지는 일이다.”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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