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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아의 주책(술을 부르는 책들)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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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잘 쉬자고 채찍질하는 사회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2년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는 2012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며 온 사회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28쪽의 얇고 작은 책이지만 단어마다, 행마다 묵직한 함의가 가득해 한 문장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대중서 밖의 본격 철학책’인데, 긴 글을 읽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시대임에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17만 부 이상 판매되며 그 충격을 이어가고 있다.
한병철 교수에 따르면 피로사회를 만든 원인은 성과주의다. 성과를 냈을 때만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기에 스스로 끝없이 채찍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이어서 자유롭다는 느낌까지 동반한다. 우리는 과다한 노동과 성과를 착취하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셈이다.
성과주의는 또 다른 문제도 일으킨다. 가만히 사색하는 대신 무엇이든 당장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극을 좇고, 정보를 흡수하게 만든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멀티태스킹이 요구되며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내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하지만 이 멀티태스킹은 문명 진화의 결과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퇴보다.
“먹이를 먹는 동물은 이와 동시에 다른 과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먹는 중에 도리어 잡아먹히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새끼들도 감시하고, 또 짝짓기 상대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중략)
동물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에 사색적으로 몰입할 수 없다. 언제나 그 배경의 사태도 계속 정신적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피로사회』)
11년 전 한병철 교수의 진단은 지금 얼마나 유효할까. 베스트셀러 시장을 보면 그 흐름이 여전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는 듯 보인다.
2023년 4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지음, 어크로스)은 현대인이 ‘나도 모르는 새’ 집중력을 도둑맞아 산만해진 원인 중 하나로 멀티태스킹을 꼽는다. 뇌가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파민네이션』(애나 렘키 지음, 흐름출판)의 진단도 흥미롭다. 이 책은 인간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를 도파민에서 찾는데, 짧은 쾌락으로 피로를 잊으려 하는 도파민 중독이 우리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는지, ‘생각’을 어떻게 빼앗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명상에 관한 책 중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내면소통』(김주환 지음, 인플루엔셜)은 정신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내면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디지털 인류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건 자기 안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과 소통하는 것, 그뿐이다. 오죽하면 그럴까.
얼마 전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퇴근하면서 휴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다녔던 휴가 중 어디가 특히 좋았느냐는 동료의 질문에 나는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에 찾아가서 전시 구경할 겸 쉬다가 온 휴가가 좋았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동료에게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냐고 묻자 그는 “대관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기억에 남는 휴가가 되겠다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휴가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잘 쉬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보내는 휴가는 의미가 없다고, 왠지 마치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았다.
휴가조차 성과를 남겨야 안심이 되는 걸까.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순 없는 걸까. 노션 앱을 열어 한가득 적어둔 휴가 계획을 살펴봤다. 다 지워 버릴까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조용히 앱을 닫았다. 성과 중독을 해독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박윤아 프로필 사진

박윤아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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