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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서평 연재14]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14편
별•시•눈…외자들이 주는 위로의 힘

 

14.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지음, 난다, 2023.05.31.)

 

‘사랑’이라 말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할까? 글쓰기 교실 학우들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사랑을 주제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현상들을 표현할 때 얼마나 그 단어 자체에 발목을 잡히는지 알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맘 놓고 안길 수 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걸 말할 수 있으며 실컷 울어도 괜찮은 것. 기다릴 때는 설레고 만나서는 애틋하며, 헤어지면 못내 그리운 것. 뜨겁게 안아 손을 녹여주고 온기를 나누어 주는 것.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가 하면 문득 보고파 달려가게 만드는 것.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드는 것.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설령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 때로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도 하는 것. 같이 있으면 일분일초가 아깝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고, 내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는 것.

 

나는 사랑이라면 거울에 반사된 햇빛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그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뜨겁고 강렬한 사랑의 빛깔은 아주 쨍한 핫핑크라고 우기곤 했다. 그런데 나와는 다르게 사랑을 ‘무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의 서문에 쓴 문장이다.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 늘어난 속옷처럼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다시 보면 우아한 우리의 부피. 매일 산책하는 강변의 기나긴 길과 일렁대는 강물과 버드나무 줄기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런 아름다운 걸 ‘무채’라고 퉁쳐서 불러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시인은 어느 절의 스님 손에 자랐고, 후에는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했다. 어른이 된 그는 할머니 집에 살 때,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엄마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자신을 키워 준, 지금은 죽고 없는, 혜능이라는 비구니와 함께 갔던 시장 골목과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주던 스님의 손길을 그리워한다. 쪼그려 앉아 할매와 함께 씹던 가을무의 알싸하고 달콤한 맛을 그리워한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스님의, 할머니의, 엄마의 사랑이 아닐까. 쨍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광목 같은 무채색의 투박한 사랑.

 

세상의 무용하고 아름답고 명랑한 것을, 사랑스럽고 환하게 세상을 흔드는 것을 시라고 부르는 그는 그리움을 쓰며 인생을 살아간다. 어떻게든 시가 함께 했기에 사랑을 쥐고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알지 못해도 생존에 하등의 영향이 없는 시는 때로 삶을 써 내려가는 이유가 되고 의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서는 시의 냄새가 난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시인들의 전매품인가 싶게 그의 책에는 그리움의 냄새가 묻어있다.

 

“말랑말랑한 시는 떡과 살에 가깝지. 꿈과 달과 밥과 콩은 힘이 돼주고 숨과 금과 은과 윤은 고요히 빛나고, 그러고 보면 외자로 된 말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별, 시, 눈, 꽃, 손, 개, 국, 볼, 종, 빛, 빵.
나는 시 쓰고 동생은 빵을 굽는다. 우리의 직업은 한 글자라서 사랑이라네.”

 

외자로 된 말이 위로가 된다는 그의 말이 정말 그렇다. 두 아이를 낳고 살면서 점점 ‘꿈’이 없어지던 나는 ‘책’을 읽으며, 책 속의 ‘나’를 만났다. ‘글’을 쓰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끼’를 발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새로운 ‘꿈’을 꾼다. 한 글자로 되어서 힘이 되는 말이 또 무엇이 있을까,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힘, 열, 길, 딸, 집, 틈, 편, 통, 쌀, 밥….., 저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달려온다. ‘맘! 밥, 줘.’ 아! 나는 오늘 멋진 시를 쓰긴 틀린 것 같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시보다 밥이 먼저니까. 이런 시, 밥.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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