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의 노래』
(마친 슐레스테 지음 / 니케북스)
저자 마틴 슐레스케는 바이올린 제작자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장인의 자세로 삶을 대하고 신 앞에서 살아간다. 저자와 같은 자세로 내 삶의 순간에 유심히 관심을 기울였던 게 언제였는지 돌이켜본다. 풍파를 맞으며 자란 가문비나무는 바이올린의 훌륭한 울림통이 된다. 잔가지를 떨치며 자라나는 가문비나무를 상상하니 한겨울의 의정부가 떠오른다. 유난히 추웠던 1월의 의정부에는 어디에나 곧고 높게 뻗은 앙상한 나무가 있었다. 넓은 하천과 절의 입구, 음악도서관 유리창 너머, 미술관 정원까지, 마른 잎 쌓인 어둑한 풍경은 언젠가 비출 햇살 한 줌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가문비나무도, 가로수도, 우리도 울림을 만들어낸다. 다만 어떤 울림을 만들어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억 너머로 사라졌던 한겨울의 의정부 나무가 선명히 각인됐다. 장인의 사색이 담긴 저자의 글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한국문화컨텐츠비평협회홍보위원
『젠더 수업 리포트』
(이유진(달리) 지음 / 오월의봄)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
정보라의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무형의 공포, 알 수 없는 공포, 은유적인 공포를 선보인다. 물론 공포심을 채워줄 존재가 등장하긴 한다. 다만, 그것이 주는 공포심은 우리가 호러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마주한 그것과는 다르다. 이 점이 영화 등 영상매체에 비해 문학이 갖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 몇 줄의 문장이 우리가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공포보다 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건 정보라의 ‘환상문학’이 가진 특별한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문학평론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환상문학’이 지닌 문학적 가치나 장치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른다. 확언할 수 있는 건 에드거 앨런 포에 비견되는, 이상하고도 비논리적이며 초자연적인 소재를 통해 선사하는 쭈뼛한 이질감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덧붙여 나 같은 ‘대왕 겁쟁이’마저 글에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인 문장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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