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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아의 주책(술을 부르는 책들)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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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과학이 주는 위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23년

 

우리 집에는 반려묘가 둘 있다. 둘 다 올해 13세로, 사람으로 치면 68세다. 4개월도 안 된 새끼 고양이일 때 길에서 각각 구조되어 한 식구로 함께 산 지 13년이 되었다.
그중 둘째 고양이가 최근 심장비대증 진단을 받았다. 심장 벽이 계속 두꺼워지는 질병이다. 벽이 두꺼우니 심장 안에 피를 담을 공간이 좁아지고 피가 조금밖에 안 담기니 심장이 더 많은 피를 만들기 위해 더 빨리 뛰어서 벽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병이다.
죽음까지 6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받았고, 심장 벽이 두꺼워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매일 아침 알약을 한 알씩 먹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둘째 고양이의 소식을 전했다. 멀게만 생각했던 이별이 한층 가까워졌음을 실감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매일 약 먹이는 것밖에 없음에 절망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13년을 함께 살며 신뢰를 쌓은 덕분에 반려묘가 잘 참고 약도 먹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상심한 나를 달래려는 그 마음이 너무 귀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슬픈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분명 아닐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고양이와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고양이는 태생적으로 인간에게 맞춰주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걸. 인간을 배려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대체로 인간의 바람이 담긴 판타지일 뿐이다. 우리 집 둘째 고양이가 약을 먹어주는 건 내가 순식간에 목구멍 안으로 알약을 던져넣은 뒤 입을 닫아 삼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충동을 이기며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믿음은 사실과 관계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간절한 바람은 도리어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욕망은 그만큼 크다. 인간이라면 예외는 없다.
“케플러와 갈릴레이를 비롯해 과학혁명 여명기의 과학자들은 너나없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싸워야 했다.
진리가 아닌 견해를 말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권위 때문에 너무 오래 틀린 주장이 진리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뇌에 관해서도 그는 명백하게 틀린 주장을 했다. 동시대의 의사들은 즐거움과 유쾌함이 비탄이나 눈물과 마찬가지로 모두 뇌에서 일어난다고 단언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과 고통을 포함한 감각이 모두 심장에서 비롯한다는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생리학자들이 신경세포의 존재와 작동 원리를 확인한 19세기 중반까지 ‘심장설’은 지배적 학설로 군림했다.”(『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믿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증명할 수 없어도 믿어버리는 것, 피할 수 없는 욕망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그런 자신을 제어할 방법이 있다. 과학이다. 모든 문제의 만능 키는 아니지만 적어도 과학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준다.
유시민 저자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서 60년이 넘도록 인문학만 공부하고 과학을 멀리 해 온 자신의 무지를 고백한다. ‘나는 무엇인가’도 알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한다는 건 얼마나 허망한가. 인간과 세계가 무엇으로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안 뒤에야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둘째 고양이의 심장비대증 진단 이후로 ‘문과 여자’인 나도 상념의 자리에 과학을 조금 더 들여놓았다.
평소처럼 밥 먹고, 뛰어다니고, 늘어져 자는 둘째 고양이를 볼 때면 저대로 한없이 오래오래 잘 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믿고 싶은 충동이 든다. 고양이의 마음은 어떤지, 과연 내 기분을 알아줄지, 행복을 느끼는지 상상하고 자책하며 무한한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아픈 고양이의 마음과 미래를 가늠하는 건 아직까지 판타지의 영역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잠시 위안받을 수 있을진 몰라도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덜 아프도록 꼬박꼬박 약을 먹이는 것,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 상태를 정확하게 체크하는 것, 노화를 받아들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사랑을 주는 것이 결국 내게 더 정확한 위안이 될 테다.
“과학 공부가 그런 맛이 있는 줄은 몰랐다.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 나는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내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워졌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덜 무섭다.”(『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박윤아 프로필 사진

박윤아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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