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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연재17]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17편
사람 몸의 주인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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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지음, 문학동네, 2018.04.20)

 

어렸을 때 집에 누가 놀러 오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는 ‘언제 갈 거예요?’라고 물었었다. 어른들은 ‘너는 왜 그런 거부터 물어보니, 빨리 갔으면 좋겠니?’라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나에게는 돌아가는 시간이 중요했다. 그 시간이 더디 오기를 바랐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헤어짐이 못내 아쉽다. 헤어지는 일은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부엌에 들어서면 언제나 천길 벼랑이 앞을 가로막았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정해져 있다면, 그 이별이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라면 남은 시간이 얼마나 귀할까.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아내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남편의 이야기다. 왓챠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원작이라고 해서 소설인 줄 알았다. 읽는 내내 남편의 뒷모습이 그려지는 영화 같은 에세이이다.

 

부엌일을 하지 못하게 된 아내 대신 부엌에 가야만 했던 그의 두려움은 단지 부엌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없는 부엌은 곧 그가 마주하게 될 아내가 없는 집, 아내가 없는 여생, 아주 오랫동안 익숙해지지 않을 ‘아내의 부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쩔 도리없이 그는 부엌에 섰고, 매일 요리를 했다. 아내를 간호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부엌에서 배운 새로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어서, 삶의 한 부분을 영원히 살려 두고 싶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글을 쓰는 남자는 역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슬퍼서 술을 마시거나, 우느라 슬픔에 허우적거리지 않았다. 슬픔보다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아무리 슬픈 이야기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된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는 요리를 하면서 맛있게 먹어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힘을 냈을 테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을 위안으로 삼았을 것이다.

 

“망고 주스를 마실 때 눈가를 스쳐지나가던 순간적인 희열과 반짝임……얼마 만인가, 고개를 들고 애기처럼 웃었다. 바로 이 맛이야. 살 것 같아. 이 기억도 세월과 함께 사라지겠지. 지금 이 아픔과 함께.”

 

기억은 참 얄궂다. 잊은 듯하다가도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며 사라졌던 그날의 기분을 상기시킨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라도 저자는 망고주스를 마실 때 아내의 미소를 떠올리겠지. 그런 날에는 그리운 아내를 만나게 되겠지.

 

나에게는 떡국이 그렇다. 십 년 전쯤, 설날이 조금 지난 추운 날이었다. 오랜만에 친구가 집에 왔는데, 마침 사골국이 있어 떡국을 끓이기로 했다. 사골국에 떡을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 휘리릭 저어 주고, 어슷하게 썬 파와 김 가루를 고명으로 얹어 내었다. 배가 고팠는지, 오는 길이 추워서 그랬는지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국물을 연신 떠 넣었다. 안경에 김이 서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혹시 너무 맛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들며 ‘평생 이렇게 따뜻한 떡국은 처음이야.’라고 말했다. ‘야! 그럼, 여태 네가 먹은 떡국은 다 차가웠어?’라며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안경을 벗어 내려놓는 친구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혼하고 지방에서 혼자 살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우리 집에 들렀는데, 별거 없는 떡국 한 그릇에 울컥했나 보다.

 

마음을 위로해 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국물 요리를 준비한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 쓸쓸한 속을 데울 때 마음이 함께 데워진다. 강창래 작가의 말처럼 사람 몸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떡국을 끓이다가 친구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떡국이 먹고 싶으면 집으로 오라고, 김장 김치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고.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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