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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평20] 짧고 강한, 서평연대의 출판 숏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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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오타쿠가 미래의 희망이다.”라는 제목의 장난스럽고 진지한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말의 패러디로 ‘사람’이라는 글자 대신 여러 단어를 넣은 ‘oo이 미래다’라는 말이 한동안 유튜브와 인터넷 게시판에 돌아다녔지만, 내 알고리즘에 가장 많이 떴던 문장은 ‘오타쿠가 미래다’였다. 일본에서 2001년에 출간되어 서브컬쳐 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한 이 책은 ‘오타쿠’라는 키워드로 바라본 일본 사회를 얘기한다. 동시에 이 책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라는 정체성이 우리가 사는 문화자본주의 시대에서 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있다. 그들은 콘텐츠의 홍수라는 이 시대에서 마이페이스로 그들만의 ‘진정성 있는 가짜’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녔다.

 

“오타쿠적 감성의 기둥을 이루는 것은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정으로 감동하는 거리감’이다”(이 책 120쪽)

 

오타쿠는 예전부터 한국에도 일본에도 존재했지만, 지금 오타쿠라는 정체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더는 숨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점점 오타쿠라는 걸 숨길 필요가 없는 시대, 오타쿠라는 게 오히려 유리한 시대가 오고 있다. 어느새 인싸들의 시대가 저물고 아싸들의 시대가 온 것처럼, 가짜 같은 현실 대신 진짜 같은 가짜를 진짜로 사랑하는 오타쿠들이 오고 있다.

 

맹준혁 프로필사진

맹준혁 / 출판편집자, 공부공동체 챇챇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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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후 15년 만에 출간된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수록된 15편의 단편이 모두 고요한 상실의 풍경을 그린다. 작품은 전부 사십 대 남성 화자가 주인공이며 이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 또는 주변인들이 예술 계통이다. 이들은 나이가 들며 으레 요구되는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거나 혹은 그 반대로 자유로운 대신 불안하게 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이들은 공평하게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 상실의 대상은 우리 인생의 영원한 화두들로 젊음과 사랑, 꿈, 그리고 평화다.
책임질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자식이 없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빠져나온 뒤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오스틴」), 화가 애인이 제 작품 중 가장 좋아한다는 작품을 선물해 줬지만 애인이 죽고 난 후, 나 스스로 그 애인을 진정으로 알았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 드는 당혹감(「넝쿨식물」), 첼리스트 아내가 병으로 몸의 주체성과 예술가로서의 자아까지 잃어 갈 때, 아내의 연주를 사랑했던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먹먹함(「첼로」), 마흔셋이 되어 삶을 잘못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허탈함(「라인벡」), 친구가 실종된 후, 친구의 집에서 불현듯 모든 게 있는데 친구만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때의 부당함(「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가 그려 내는 상실의 감정들은 이렇듯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모양새다.
전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도 그러했듯 앤드루 포터는 상실과 부재를 겪는 인물들의 슬픔을 묵묵히 보여 줌으로써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마음을 애써 모른 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소설 속으로 호명해 위로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무얼 잃어버렸는지 도통 알 수 없어 삶이 혼란하기만 하다면 이 소설을 펼쳐 보길. 당신에게서 ‘사라진 것들’을 대신 알아채 주는 이야기들이 거울에 비친 얼굴처럼 당신을 정확히 바라봐 주고 있을 것이다.

김상화 프로필사진
김상화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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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장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민음사)

 

『말』은 경쾌하고 까불거리는 책이다. 대가라면 이 정도 자기애는 있어줘야지, 싶은 ‘읽기’와 ‘쓰기’에 대한 사르트르의 자서전은 그 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유년기에 대한 사르트르의 기억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묘사하는 듯 생생하다. “나는 오직 글쓰기를 위해서만 존재했으며,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할 따름이었다”는 ‘쓰기’에 관한 사르트르의 문장 앞에선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러나 ‘읽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사르트르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아버지 없이 자라 슈바이처 집안(노벨평화상을 받은 A. 슈바이처는 사르트르 어머니의 사촌이다)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기 위해 스스로에게 ‘신동’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하고 연극을 했던 사르트르는 이 세상 모든 어린 아이와 다름없다. 자유와 자유로부터 비롯된 좌절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연극적으로 책을 읽어나갔던 사르트르에게 책의 세계는 그가 인식한 최초이자 유일한 세계였다.
그가 유년기에 경험한 부조리의 세계는 사실 사르트르 개인의 일화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르시시스트적이고 심지어는 강박에 가까운 자기애와 집착을 보여주는 이 책을 굳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유년기를 거쳐 사르트르는 삶의 부조리를 깨닫게 되고 후설의 ‘의식의 지향성’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이며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 이외에 다른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인간은 의식의 주체라고.
『말』은 사르트르 실존주의 사상의 근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1964년, 사르트르가 이 책을 출판한 후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된 것도 그 때문일 테다(물론 그는 수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사르트르는 아닐지언정 이 책을 읽고 나서 각자 저마다의 『말』을 써 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을 테다. 때때로 나는 궁금하다. 당신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말』’이.

 

김미향 프로필

 

김미향 / 출판평론가,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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