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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여름이 책표지

[서평 연재7] 김윤정의 Checkilout in Book

제7편
다정함에는 크고 작은 것도,
깊고 진한 것도 필요하지 않다

너무나 많은여름이 책표지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레제, 2023.06.26.)

파운드케이크는 밀가루와 달걀 그리고 설탕과 버터를 각각 1파운드(453g)씩 넣어 굽는 영국의 오래된 디저트 중의 하나이다. 조리법이 비교적 쉬운 편이라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종종 구워서 선물하기도 한다. 빵집에서 사면 간편할뿐더러 더 맛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집에서 굽는 이유는 따로 있다. 넣고 싶은 부재료를 내 맘대로 첨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시나몬 가루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나몬을 왕창 뿌려주고, 아이가 있는 집에 갈 때는 초코칩을 사정없이 넣어준다. 연배가 있는 분들을 만날 때는 단호박을 쪄서 살짝 으깨어 넣기도 한다.

물론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해서 다 맛있지는 않다. 버터나 달걀 같은 액체류는 많이 넣으면 빵이 퍼져버린다. 기본재료는 정량을 넣는 게 원칙이고 부재료는 적당하게 넣어야 한다. 하지만 과하게 넣어도 절대 식감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재료가 딱 하나 있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한가? 나에게 음식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는 모든 것을 흔쾌히 가르쳐주지만, 그 딱 하나의 마지막 재료에 대해선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준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하늘이 내려준 그 어떤 특별한 것에 가깝지 않을까. 나만이 할 수 있고, 나만이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말하면 잘난 척인가 싶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 바로 단편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쓴 작가 김연수이다.

김연수 작가는 이 년 전 가을, 제주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낭독회에 온 이들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인문학서를 읽는 독서 모임의 회원들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낯선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의 뜨거운 낮과 낮 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상상했다. 지친 그들이 쉬는 밤을 생각하고, 그렇게들 살아내는 하루를, 그 하루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일생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이 매일 돌보는 것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낮 동안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싶었다.”

그날의 낭독회 이후, 김연수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고, 산문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낭독회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소설을 썼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그들의 음성이 듣고 싶어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니 그는 왠지 다정한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고 출판을 하는 이유가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 있다고 소설을 빌려 고백한 김연수 작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를 두고 보면, 한국 문학에서 생존과 진화가 가장 유력한 작가가 바로 김연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이 덕분에 나는 ‘다정하다’라는 말을 자꾸 곱씹어 본다. 식사 자리에서 부득이 먼저 식사를 시작해야 했을 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의 접시에 음식을 미리 덜어놓은 손길에서 다정함을 본다. ‘밥 먹었어?’, ‘네가 좋아하는 빵을 구워왔어.’, ‘요즘 몸은 좀 어때?’, ‘다음에 또 만나자.’ 평범한 말들에서 다정함을 듣는다.

다정함에는 크고 작은 것도, 깊고 진한 것도 필요하지 않다. 정성이건 다정함이건 모두 마음가짐의 문제, 즉 ‘태도’이다. 똑똑한 머리로 내숭 떨며 남을 속일 생각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다정하고, 진정성 있게 정성을 들여야, 세상으로부터 그에 알맞은 진정한 보답을 받는다. 보답은 커피 쿠폰으로 올 때고 있고, 누군가의 눈물로 오기도 한다. 반드시 언젠가는 돌아온다. 내가 파운드케이크를 구울 때 넣는 그 마지막 재료는 바로 ‘보답하는 마음’이다. 당신의 다정함에 정성으로 보답하고 싶은 그 마음.

김윤정 작가 프로필 사진 책키라웃

– 김윤정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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